1987년 9월10일, 워싱턴. 한국과 미국이 생명보험 시장 개방에 합의했다. 합작투자 형태로 미국계 보험사의 국내 진출을 허용한 것.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에게도 굳게 닫혀 있던 생명보험업에 신규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이로써 열렸다.
시장개방에 응하지 않을 경우 바로 ‘슈퍼 301조’를 발동하겠다는 미국 측의 으름장으로 시작된 협상 막바지의 최대 난제는 진입기준. 사사건건 간섭하는 미국에 한국은 ‘슈퍼 301조가 아니라 3001조가 발동되더라도 기준은 우리가 정한다’고 맞섰다.
연말께 시장진입 기준이 알려졌을 때 기존 생보사들이 들고 나섰다. 합작사는 물론 내국사(전국 영업권), 지방사, 순수 외국사 설립까지 허용했기 때문이다. 반발하는 기존 생보사들을 금융당국은 이렇게 설득했다고 전해진다. ‘주변에 음식점이 많이 생기면 시장규모가 커져 오래된 음식점의 매출은 더 오르는 법이다. 외국계 몇 개만 들어오면 순식간에 시장점유율을 빼앗길 수 있는 반면 신설사를 수십 개로 늘리면 외국계에 돌아갈 몫이 적어진다.’ 결국 6개였던 생보사는 합작사에 내국사ㆍ지방사ㆍ외국사를 합쳐 33개로 늘어났다.
금융당국이 생각했던 ‘물타기’와 ‘원조집 이론’이 주효했는지 1987년 12조원을 약간 웃돌던 생보업계의 총자산이 300조원대를 넘어선 오늘날 국내 대형사의 시장지배력은 여전하다. 문제는 부실화. 우후죽순격으로 등장한 신설사들의 퇴출과 합병으로 생보사 수는 22개로 줄어들었다. 공적자금도 적지않게 들어갔다. 요즘은 외국계의 약진도 눈에 띈다.
생보시장 개방 21년. 사공일 당시 재무부 장관과 강만수 보험국장이 주도한 개방정책에 대한 평가는 극히 엇갈린다. ‘훈장감’이라는 극찬의 반대편에 거품과 손실을 키웠다는 지적이 상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