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윤용로 외환은행장은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의 정보기술(IT)과 카드 부문 통합을 두 은행 합병 전까지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윤 행장의 발언이 전해지자 외환은행 노조는 "이로써 갈등이 일단락됐다"고 화답했다. 외환은행 노사가 화해를 했지만 뒷맛은 개운하지 않았다.
외환은행 노사가 반목하게 된 원인을 찾아가 보면 그 끝에는 하나금융지주가 있다.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인수 당시, 합병 전까지 IT통합은 없을 것이라 공약했다. 하지만 그것은 꼼수였다. 뒤로는 통합작전을 추진했다. 꼼수가 들통나자 슬그머니 뒤로 숨었다. 그 사이 외환은행 노사는 갈등의 골을 키워만 갔다.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주체가 빠진 화해가 오래 갈 수는 없었다.
일단락 돼가던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간 갈등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갈등은 캘린더와 다이어리 제작 과정에서 비롯됐다. 캘린더와 다이어리라는 '사소함'에 속살이 감춰져 있지만 속내는 자존심 싸움이다. 그만큼 갈등의 골이 깊다는 얘기다.
지난달 말 외환은행 직원들에게 2013년용 다이어리가 배포됐다. 다이어리 뒷면에 인쇄된 하나금융그룹 로고가 문제가 됐다. 노조는 사측에 강력하게 항의했고 문제가 된 다이어리 배포는 중단됐다. 다이어리를 모두 불태워버리겠다는 말조차 나왔다. 노조는 곧 새로운 다이어리와 달력 제작에 들어갔다. 지난 2011년에 진행됐던 외환은행 직원의 투쟁장면이 담겼다. 하나금융의 로고는 당연히 삭제됐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룰 두고 "국내 금융산업에서 인수합병(M&A)은 늘 있어왔던 일이지만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처럼 갈등이 오래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며 "오죽했으면 다이어리에 투쟁장면을 담겠는가"라고 말했다.
문제는 하나금융지주의 일방적 태도가 외환은행 내부갈등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회사의 갈등을 봉합해줘야 할 모그룹이 오히려 싸움을 유발하고 싸움이 커지자 뒷짐만 쥐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말 외환은행은 본점 대강당에서 'KEB소통 마당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본점과 인근 지점직원을 포함해 약 500여명이 참석했다. 약 3시간째 행사가 진행되고 윤 행장과 노조위원장이 단상에 올라 러브샷을 진행했다.
다음날 이 사진이 석간신문에 게재되자 노조는 홍보부에 사진기사를 삭제ㆍ철회해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노사 간 갈등이 완전히 씻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측이 여론몰이에 나선 것으로 노조가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사정이 이러니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당장 계열사인 하나SK카드의 히트상품 '클럽SK카드'가 대표적이다. 하나금융지주가 계열사 간 교차판매 데뷔작으로 외환은행에서 클럽SK카드를 판매하게끔 했지만 월평균 판매량은 1,000장을 겨우 넘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은행이 현대카드 대신 창구에서 판매하는 '하나은행-현대카드C'만 해도 월평균 판매량이 3,000장에 달한다. 반면 원래부터 '제 식구'였던 하나SK카드의 메가캐시백체크카드는 월평균 판매량이 1만장이 넘는다.
급기야 최근에는 사측의 고유권한인 인사발령을 놓고 노조가 날을 세웠다. 론스타 투쟁 당시 큰 역할을 했던 노조간부가 최근 인사에서 지점발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노조는 사측에 본점에 배치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사측은 이를 무시하고 그대로 발령을 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인사대상자는 차기 노조위원장으로 꼽힐 정도로 노조원들의 평판이 좋았다"며 "사측이 노조를 견제하기 위한 조치 아니었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