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남북정상회담 불안과 기대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막바지에 혹시나 역전 만루 홈런의 기회로 삼고 정상회담에 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오산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참여정부는 평화번영정책을 통해서 평화체제 구축에 역점을 두려 했으나 핵문제 때문에 이를 전혀 진전시킬 수 없었다. 남북관계조차도 과거 정권의 정책을 근근이 답습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어렵사리 성사된 정상회담에서 평화체제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참여정부로서는 당연하겠다. 그러나 평화체제 문제는 실질적인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의 주도권이 크게 작용하지 않는 의제다. 역시 북미관계가 핵심 관건이다. 진정성을 갖고 우리 민족이 함께 이 문제를 풀자고 김정일 위원장에 호소도 하고 당근을 제시하면서 유인하려고 하겠지만 북한으로서는 추상적인 선언 정도로 맞대응하지 않을까 싶다. 워낙 파격을 좋아하는 김 위원장이니까 혹시 노 대통령의 호소와 유인을 ‘통 크게’ 받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어느 정도 구체적인 평화체제에 대한 합의안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 안은 과거 남북기본합의서처럼 국제적 상황과 북한의 정책에 따라서 실천에 옮겨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역시 핵문제가 해결돼야 그 어떤 평화에 관한 합의도 의미가 있고 효력이 생긴다는 말이다.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과 이를 통해 자신의 체제 안전을 보장 받으려는 것은 다분히 선전적인 의미가 있다. 실제로 북한이 핵무기 개발이나 확산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는 북한을 미국이 선제공격할 리가 있겠는가. 혹자는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취해 왔고 있지도 않은 핵무기를 구실로 이라크를 침공했는데 북한을 침공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솔직히 필자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국제 상황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북한은 미국에 중요한 나라가 아니다. 아니 관심이 없다고 얘기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핵무기에 관심을 갖는 것이지 북한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 부시 정부는 안팎으로 곤란한 처지에 있다. 이라크전, 이란 핵개발, 탈레반 등의 국제 문제 외에도 국내 경기의 하락 등으로 부시 대통령의 인기는 역대 대통령 중 최하위에 속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문제라도 풀어야 한다는 것이 부시 정부의 생각이다. 불능화-신고의 2단계 로드맵에 합의했지만 이미 워싱턴에서는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풀어줄 것이라는 얘기가 떠돌았다. 그만큼 외교성과가 필요한 지경이다. 지금 북핵 문제가 속도를 내는 이면에는 이러한 부시 정부의 속사정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북한이 잘 해서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김 위원장은 이참에 어느 정도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미국을 밀어붙여서 핵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개선을 맞바꾸겠다는 계산을 할 법하다. 따라서 부시 대통령이 언급한 바 있는 종전선언을 포함해서 평화체제 문제는 미국과 대등하게 거래함으로써 김 위원장의 위상을 과시하고 싶어 할 것이다. 더구나 내일이면 물러날 노 대통령을 과연 ‘민족의 지도자’인 김 위원장이 자신의 협상 파트너로 간주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노 대통령은 홈런을 치려하기 보다는 안타를 쳐서 후속 타자들에게 기회를 주는 그런 타법을 구사하는 게 바람직하다. 비록 멋지고 감동적인 회담의 모양새는 나오지 않더라도 이번 기회에 평화 문제를 비롯해 경협 문제, 이산가족 문제, 각종 남북 교류 문제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요구하고, 설득하고, 한국의 사정에 대해서 얘기해 주는 것이 그 어떤 합의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솔로 홈런 한방으로 전세가 역전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하는 회담 결과를 기대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