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지난달 임기가 만료된 시장감시위원장을 지금처럼 관피아(관료 마피아)가 맡는 것이 문제 될 게 없다고 밝혔다. 세월호 사고 이후 박근혜 정부가 관피아 척결에 나서면서 관피아라는 말이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가볍지 않은 만큼 최 이사장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기사가 나간 후 업계 관계자들로부터 최 이사장이 용기 있는 발언을 했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기자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관 출신인 최 이사장의 말이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닌 소신 있는 발언으로 들리는 것은 시감위원장이라는 자리가 가진 성격 때문이다. 시감위는 자본시장을 감독하고 규제하는 기구다. 공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기구다. 시감위는 시장에 문제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투자자들을 보호하고 시장참가자들 간의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 측 사람들과의 긴밀한 업무협조가 필수적이다.
자본시장이 발달한 미국이나 일본의 시장감시기구도 정부 출신의 인사가 수장을 맡고 있다. 미국의 금융산업규제기구(FINRA)의 리처드 케첨 의장은 증권업무를 감독하는 최고 기구인 증권거래위원회(SEC) 출신이다. 일본의 시장감시기구인 일본거래소 자주규제법인(JPX Regulation)의 사토 다카후미 이사장은 금융감독청(FAS) 청장 출신이다.
전문가들도 최 이사장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계적으로 거래소가 영리를 추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규제는 공공적인 측면이 강조되기 때문에 최 이사장의 생각이 옳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자리의 성격상 관 출신을 앉히는 게 맞는다면 관 출신의 인사를 앉혀야 한다. 최 이사장과 거래소도 자신의 소신이 옳다면 소신대로 행동해야 한다. 최 이사장의 소신이 흔들릴 때 자리에 어울리지도 앉는 민간 출신의 인사나 어설픈 정피아(정치 마피아), 교피아(교수 마피아)가 자리를 넘볼 수 있는 틈이 생길 수 있다. 관피아 논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 출신의 어떤 인사를 앉히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