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유럽시장서 日제품 가격인하 공세 시달려<br>對日수출주력 中企는 가동중단등 고사위기
“지난해보다 엔화 가치가 20% 떨어져 손해를 무릅쓰고 울며 겨자 먹기로 수출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겠습니다.” (건축자재 수출업체 H&H의
김한규 사장)
엔화 가치가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국제 시장에서 일본 기업들과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수출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주력 수출품목인 자동차ㆍ전자제품은 북미ㆍ유럽 등 선진국 시장에서 이미 일본 제품의 치열한 가격인하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대일 수출에 주력해온 중소기업들은 문을 닫는 기업들이 속출하는 등 고사위기에 몰리고 있다.
25일 무역협회ㆍKOTRA 등에 따르면 엔화 가치 하락으로 미국ㆍ캐나다ㆍ독일 등 선진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한국 제품의 경우 일본 제품에 비해 가격인하 폭이 낮기 때문이다.
전자업계는 북미ㆍ유럽 시장에서 일본 제품의 가격인하로 고심 중이다. 엔화 가치 하락으로 삼성전자ㆍLG전자 등 국내 전자업체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제품은 디지털TV. 소니의 브라비아, 샤프의 AQUOS 등 LCD TV와 마쓰시타의 PDP TV는 삼성ㆍLG의 직접 경쟁관계에 있는 만큼 타격이 예상된다.
실제 최근 미국 시장에서 일본 샤프전자가 삼성ㆍLG 제품보다 가격이 30% 저렴한 LCD TV를 출시, 국내 업계가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지난 8월 일본 샤프가 8세대(2,160×2,460㎜) LCD 라인을 가동하며 크기 경쟁에서도 한발 앞서나가고 있어 가격경쟁력까지 우위에 설 경우 자칫 LCD TV 세계 1위 자리도 위협받을 수 있다.
반도체도 직간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낸드플래시의 경우 도시바가 20%대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는 만큼 가격을 낮출 경우 한번 더 시장이 출렁일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다만 낸드플래시 수요가 워낙 빠르게 늘어 가격이 일정 수준 하락해도 현 경쟁구도를 깨뜨리지는 못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도 북미 시장에서 가격인하 전쟁에 직면하고 있다. KOTRA 조사에 따르면 미국 시장에서 쏘나타 GL과 GLS의 경우 판매가가 지난해보다 각각 2,000달러 및 3,000달러가량 상승했다. 반면 경쟁제품인 도요타 캠리의 경우 지난해 말과 올 판매가에 변동이 없어 반사혜택을 누리고 있다.
현대차는 환율 영향을 받지 않는 미국 앨라배마 공장 생산량을 늘리고 쏘나타 외에 싼타페까지 새로 생산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동급 일본 제품과 가격격차가 좁혀지고 있어 고전이 불가피한 전망이다.
일본 수출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들의 고통은 더욱 심하다. 수산물 가공품을 일본에 수출하는 동양수산의
이상천 사장은 “올 들어 일본 수출이 30~40% 줄어든데다 수입선들이 달러 결제에서 엔화 결제로 돌아서고 있어 고통이 극심하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업체들이 은행대출을 갚기 위해서라도 현재 적자수출도 감수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신승관 무역협회 무역연구소 연구위원은 “일본기업 대비 경쟁력을 높이려면 고부가 신제품 출시와 마케팅 능력 향상이 필요하다”며 “비슷한 제품의 가격경쟁력만으로 겨루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