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빵 송년회」가 유행하면서 주부들의 얼굴이 희색으로 변했고 학원가의 아침반이 만원을 이루는등 새로운 송년회 풍속도가 나타나고 있다.만빵 송년회는 1인당 1만원으로 송년회를 해결하는 것으로 요즘 각직장의 샐러리맨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5명이 모은 5만원이면 삽겹살에 소주 2병, 2차로 호프집에 사서 맥주 한잔씩 먹기에 딱 알맞다. 2차는 2차지만 곤드레 만들레를 위한 것이 아니고 말그대로 입가심에 그친다. 그러다보니 술자리가 일찍 끝나고 덩달아 귀가 시간도 빨라진다.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이같은 건강 송년회가 확실하게 자리잡아 가고있다. 회수가 줄어들고 술자리 내용도 달라지고 있다. 2차, 3차로 이어지는 질펀한 술자리 대신 식사와 반주로 조용히 자리가 끝난다. 밤12시가 넘도록 3차까지 이어지는 송년회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현대상선 총무과의 심정택(沈正澤)과장은 『지금까지 학교동창들과 세차례 송년회를 가졌는데 모두다 「만빵」으로 끝냈다』며 『앞으로 회사동료들과 의 송년회도 만빵으로 끝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LG건설 金격수과장은 지난해 12월 한달동안 줄잡아 15번의 송년회에 참석했다. 고등학교·대학교 동창에서부터 대학동아리, 거래처, 부서, 동네친구에 이르기까지 이틀에 한번꼴로 송년회 자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올해는 아직 「한 건」도 치르지 않았고 예정된 송년회도 6회에 불과하다.
金과장은 『줄어든 송년회 덕분에 몸도 편하고 돈도 굳는다』며 『그만큼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진 것을 생각하면 씁쓸할 때도 있지만 매년 연말이면 비몽사몽속에 지내야하는 곤욕을 치르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건강송년회를 무엇보다 반기는 사람들은 주부들이다.
곤드레만드레한 남편의 모습을 예년보다 훨씬 덜 볼 수 있는데다 송년회에서 망가지는 대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남편이 고맙기 때문이다. 지출도 줄어들었다.
남편이 현대할부금융에 다니는 주부 李은주(33)씨는 『지난해까지 남편이 송년회를 마치고 새벽2시전에 집에 들어온 적이 없었지만 올해는 밤 11시면 어김없이 귀가한다』며 『쓰는 돈도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사는 주부 김혜선(40)씨는 『올초부터 남편의 봉급과 보너스가 줄어들면서 IMF 원망을 많이했는데 연말에 몸과 정신이 말짱한 남편을 보게된 것이 IMF때문이라고 생각하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남편의 음주운전을 걱정하지않아도 돼 좋다는 주부들도 많다. 강남구 서초동의 주부 이미연(39)씨는 『남편이 영업부에 근무해 어쩔수없이 차를 가지고 다니는데 지난해만해도 남편이 돌아올때까지 걱정때문에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올해는 그런 걱정을 덜하게돼 좋다』고 말했다.
바뀐 송년회 풍조는 학원 강의실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직장인들이 주로 찾는 강의는 아침6~7시의 새벽반. 전날 송년회를 치르고 출근하기도 괴로운데 어지간히 모진 마음 먹지 않고는 새벽수업에 가기 어렵다. 올해는 달라졌다. 빼먹는 사람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서울 강남의 영어전문학원인 이익훈어학원의 김형환씨는 『예년에는 12월 송년회철이 시작되면 직장인이 많은 아침반 영어수업은 수강생의 20~30%가 빠져 썰렁했다』며 『그러나 올해는 아직 강의를 빼먹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송년회의 거품이 빠지면서 돈 들쓰고 가정에 충실하고 몸도 아낄 수 있게 된 셈이다. 여기에다 자기개발까지 할 수 있어 이래저래 건강한 송년회철이다.
신동아화재 총무부 박준형씨는 『어려운 경제가 인간관계까지 소원하게 하는 것 같아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며 『그러나 건강한 송년회문화가 자리잡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밝혔다. 【이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