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원조 매카시즘의 교훈

지난 1950년 2월 미국 위스콘신주 공화당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hy)는 한 여성 모임에서 "내 손에는 미국 국무부와 정부에 침투한 205명의 좌익분자 명단이 있다"고 폭로했다. 이른바 '매카시즘(McCarthyism)'의 시작이다. 이후 4년. 미국 사회는 용공분자 논란에 휩쓸렸고 이 과정에서 정부인사뿐 아니라 미국 진보 성향 지식인들도 큰 고초를 겪었다. 원자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영화감독 에드워드 드미트릭, 극작가 아서 밀러 등이 분야별 대표적인 인사들이다. 매카시는 민주당 정권인 트루만과 그 이전 루즈벨트 행정부 집권기간을 '20년간의 반역(twenty years of treason)' 이라고 몰아 붙였고 공화당 대통령 후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1952년 선거에서 그의 지지를 요청한 뒤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리고 2012년 6월. 한반도에서는 어디선가 본듯한 풍경이 재현되고 있다. '종북' '빨갱이'라는 말이 도배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마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려는 어떤 자들도…"라며 이런 논쟁에 가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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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상황에서 '옳다' '그르다'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매카시의 말로(末路)는 비참했다는 사실만은 지적하고 싶다. 아이젠하워가 당선됐지만 매카시즘은 오래가지 못했다고 역사책은 적고 있다. 그는 1954년 그 유명한 '육군-매카시 청문회(Army-McCarhy hearings)' 에서 결정타를 맞았고 미 상원은 결국 그 해 12월 매카시에 대한 '비난(condemn)' 결의를 단행한다.

그리고 3년 뒤인 1957년 5월 2일. 매카시는 메릴랜드주 베세다(Bethesda)에서 알코올 중독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했다. 그렇게 한 개인은 갔지만 그가 미국의 지적(知的) 환경에 끼친 손해는 막대했고 매카시즘은 미국 밖 세계로 수출돼 특히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미국을 능가하는 활약을 하기도 했다.

문화계는 최근 색깔 씌우기가 지식인 사회까지 미치지 않을까 우려스럽게 보고 있는 분위기다. 역사책은 매카시즘 원조(元祖)의 최후가 비참했다고 적고 있지만 역사 속에는 역시 상황을 오판하는 인물들도 있기 때문이다.


정승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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