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정보기술(IT)을 전공해 만물인터넷(IoE·Internet of Everything)에 대한 이해가 깊고 관심도 많습니다. 한국 정부와 더 긴밀히 협조해나갈 겁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글로벌 기업들과도 만물인터넷 관련 협력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존 체임버스(66·사진) 시스코시스템스 회장은 1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본사에서 열린 '창립 30주년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서울경제신문 기자와 만나 '한국과의 협력 강화'를 강조했다. 그는 지난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박 대통령과 만나 한국을 사물인터넷(IoT) 허브로 만드는 일을 돕기로 했고 내년 1월 열리는 다보스포럼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단독으로 만나 만물인터넷 사업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체임버스 회장은 창립 30주년을 맞은 시스코의 미래 차별화 전략으로 "모든 것을 연결하고 어디서든 혁신을 만들어내며 모두를 이롭게 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또 다양한 산업과 여러 국가와의 협력관계 구축을 선언했다. 만물인터넷은 기존에 사물을 단순히 연결하는 사물인터넷을 뛰어넘어 실시간으로 얻은 정보를 분석해 통찰력 있는 결과를 전달함으로써 사람과 사물·정보를 의미 있게 잇는 미래 인터넷이다.
체임버스 회장은 "한국을 비롯한 멕시코·인도·영국·독일 등에서 도시나 국가 자체를 디지털화하는 일에 관심이 아주 많다"며 "그 중 한국은 박 대통령이 만물인터넷에 대한 관심이 높고 삼성이나 LG 같은 글로벌 제조사 역시 만물인터넷 분야에 강점이 많아 협력범위를 더 넓혀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한국 정부도 IoT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꼽았고 삼성도 IoT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만큼 시스코와의 협력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체임버스 회장은 '30세 시스코'의 지난 성과를 높게 평가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창립 이래 시스코가 해온 일은 마술 같다. 어떻게 한 것이냐'고 묻는다"며 그에 대해 두 가지 답을 제시했다. 하나는 '시장의 변곡점'을 예측하는 것, 다른 하나는 어떤 일에 있어도 고객의 요구를 제1원칙으로 둔다는 것. 체임버스 회장은 "변화를 읽어내는 시스코의 능력은 혁신에 기초하고 있고 혁신은 기술의 가능성이 무엇인지를 염두에 뒀을 때 가능하다"며 "그 열쇠는 고객이 쥐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변화가 앞으로 일어날지는 고객을 보면 답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체임버스 회장은 그 예로 시스코가 해온 예측들을 소개했다. 그는 "라우터 제작에 주력하던 데서 벗어나 1998년 인터넷에 음성기술을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앞으로 음성통화 기술이 더욱 퍼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며 "16년이 지난 지금에는 인터넷 전화(VoIP)로 발전해 여전히 중요한 기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1999년 세계 컴퓨터 하드·소프트웨어 전시회인 '컴덱스(COMDEX)'에서 처음 소개한 '스마트홈' 기술도 꼽았다. 그는 "당시 시스코는 '커넥티드 자동차'가 어떤 모습일지, 미래의 집이 어떻게 생길지를 최초로 예측했다"며 "14년 뒤에 구글이 실내 온도조절 장치 업체 '네스트'를 32억달러에 샀을 때 사람들은 (스마트홈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앞으로의 시장 변곡점은 만물인터넷"이라고 확신했다. 체임버스 회장은 "IoE는 단순히 ICT 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보험·유통·금융·스포츠 등 거의 모든 산업은 이제 '디지털 기술'과 통합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단계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변화로 10년 안에 포춘 500대 기업 중 40% 미만이 사라지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만물인터넷은 단순히 연결하는 것이 아니다. 의미를 더하는 일이 중요하다. '지능'을 불어넣기 위해 시스코만의 빅데이터 실시간 분석 등이 사용된다. 그는 "데이터 분석이 이력과 행적·수치 등 과거에 치우쳐 있었지만 앞으로는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즉각 분석할 것"이라며 "데이터와 음성·비디오 등이 모두 결합된 '분석 3.0'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고 강조했다. 또 "지금까지 시장 변화 선도와 '통합' 능력을 합친 실시간 분석은 시스코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최근 실적부진을 이유로 전체 인력의 8%인 6,000명을 감원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체임버스 회장은 "IT 분야에서 인수합병의 90%는 실패한다. 도전이 그만큼 어렵다"며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시스코를 30년 동안 지탱해온 힘"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