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섬'

안개가 드리워진 고적한 저수지, 잔잔한 수면 위에 떠 있는 파스텔톤의 작은 집들. 그리고 그 사이로 노를 저어 다니는 작은 배.「섬」은 전작「악어」「야생동물보호구역」「파란대문」을 통해 희망이 상실된 인간들의 처절한 삶과 애증을 일관되게 그렸던 김기덕감독만의 독특한 영상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원색의 강렬한 색조, 그리고 인물보다는 전체 그림속의 조화로 만드는 카메라 워킹등이 그렇다. 그러나 이전 작품보다 좀 더 대중적속으로 들어왔고 완성도를 높였다. 「섬」은 세상과 격리되어 신비감을 간직한 몽환적 낚시터와 그곳으로 흘러드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사회」라는 공간 속에서 제어된 삶을 살아가던 인간들은 이곳에서 그들 내면에 존재하고 있지만 알지 못했던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모습으로 변해간다. 영화는 세상과 격리된 몽환적 분위기를 간직한 낚시터의 주인 희진(서정)의 삶을 훑어가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낚시터를 생활터전으로 삼아 커피와 낚시 떡밥을 팔고, 때로는 몸까지 파는 인생 밑바닥의 삶을 사는 실어증의 희진. 그녀는 자살을 시도하던 현식(김유석)의 허벅지를 물밑에서 송곳으로 찔러 자살을 막는다. 그녀는 그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그에게 집착한다. 그녀의 집착은 그를 좋아하는 다방 레지를 죽이고, 다방 종업원을 찾아온 깡패를 죽이는 과감함까지 보인다. 낚시터에 검문을 온 경찰 모습을 목격한 현식은 불안감에 휩싸여 낚시바늘을 입에 넣고 자해를 시도한다. 그녀는 경찰을 따돌려 그를 구하고,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그를 섹스로 치유한다. 그날 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진 그들은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지만, 그는 그녀의 집착적 사랑과 공간적 고립감을 견디지 못하고 떠날 결심을 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생활수단이자 여성으로서의 생을 끊으려한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통의 대사가 나온다. 「아…!」. 철저히 찢겨진 상처를 안고 두 사람은 피안을 찾아 떠난다. 22일 개봉. 박연우기자YWPARK@SED.CO.KR 입력시간 2000/04/1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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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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