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근거해 전기료 우대 혜택을 받고 있는 미군에 50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군과 같은 수준의 요금을 내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공식 회신을 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전기료 인상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태세다.
27일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외교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7월 주한미군 SOFA 합동위원회를 통해 주한미군 전기요금 계약 개정안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주요 내용은 주한미군이 적용 받은 전기요금을 국군과 같은 '일반용 갑'으로 적용하자는 것이다. 전기요금은 일반용이 가장 높고 주택용, 산업용, 농사용 순으로 낮아진다. 현재 주한미군은 이 같은 체계가 아닌 전년도 전체 계약자별 전기요금을 평균으로 나눈 평균 판매단가를 적용 받고 있다. 평균 요금을 적용 받기 때문에 전기 대부분을 일반용으로 쓰는 국군보다 30%가량 싸게 쓴다. 가장 낮은 요금을 적용 받는 농사용보다 조금 비싸다.
주한미군의 전기료 할인 혜택은 오래됐다. 한국전쟁 이후 업무용(현 일반용)과 산업용 전기요금제를 혼용해서 적용하다 1970년도 후반 2차 오일쇼크가 터지자 주한미군 측이 전기료 인하를 요구하고 1980년도부터 20년 넘게 값싼 산업용 전기를 썼다. 이후 2002년 여중생 두 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미순이·효순이 사건'이 일어나 여론이 악화하자 양측은 이듬해부터 산업용에서 현재처럼 전년 전체 계약종별 평균단가를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문제는 새 요금 체제가 뜻하지 않게 주한 미군 측에 더 싼 값에 전기를 공급하게 됐다는 점이다. 정부가 만성적인 전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전기료 인상 정책을 펴면서 미군이 계약 갱신 전에 사용하던 산업용 전기료가 다른 용도에 비해 가파르게 올랐기 때문이다. 산업용 전기료는 2003년 kWh당 66원33전에서 2013년 110원77전으로 66.99% 상승한 반면 미군 전기료(평균단가)는 2003년 64원80전에서 91원95전으로 41.89%만 상승했다. 여기에 미군은 1966년 체결한 SOFA에 따라 전기료에 붙는 부가세(10%)도 면제 받고 있어 2013년 기준 미군의 전기료는 1kWh당 125원30전(부과세 포함)을 내는 국군의 73.38% 수준에 불과하다.
물자가 풍부한 주한미군은 싼값에 전기도 많이 쓴다. 미군 1인당 연간 전기사용량은 2만3,578㎾h로 국군(2,547㎾h)의 9배가 넘는다. 연간 9,200억원에 육박하는 주한미군 주둔비용도 버거운데 전기도 펑펑 쓰면서 전기료까지 싸게 주는데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재정 부담과 국군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전기료 우대 혜택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이다. SOFA 협정에는 미군이 다른 사용자(any other user)보다 전기료가 불리하지 않아야 한다고만 명시돼 있어 할인 혜택을 중단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에 대해 미군은 협정에 나온 '다른 사용자'가 국군이 아닌 산업·농업 등 모든 계약자보다 불리하지 않아야 한다고 해석해 전기료를 올릴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주한미군 전기료 정상화는 정부 뜻대로 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주무부처들이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더 강한 수준의 요구를 하기 꺼리고 있어서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너무 밀어붙이면 외교적 문제가 일어날 수 있어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면서 "전기료는 협의 사항이라 주한미군이 거절하면 사실상 해결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