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쟁이 할머니 식당에 사람들 모인다잖아. 욕에서 끈끈한 정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31일부터 전파를 타는 SBS 새 아침드라마 '맨발의 사랑'엔 여기저기서 욕이 툭툭 튀어나온다. 오른쪽 관자놀이에 둥근 점을 콕 찍고 자글자글하게 머리를 볶은 김애경의 입에서다.
말끝마다 육두문자가 어김없이 따라붙지만 불쾌하지 않고 오히려 정겹다. 늘 듣다가 어느 날부터 안 들리면 서운한 이웃집 아줌마의 욕지거리처럼.
27일 오후 SBS 일산제작센터에서 열린 드라마 제작발표회에 누군가 빼꼼히 문을열고 들어섰다. 몸빼바지 차림의 김애경이다. "촬영 좀 하게 빨리 끝내달라"고 애교섞어 손짓하는 김애경을 붙잡았다.
"드라마에서 가끔 욕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줄줄이 욕하는 건 처음이에요. 처음에 배역이 욕쟁이라기에 PD한테 '쎈' 욕 해도 되느냐고 물어봤더니 맘껏 하래. 그래도 TV는 영화랑 다르니까 좀 신경을 쓰는데 살짝 안 들리게 '쎈' 욕도 했어(웃음)." 최근 몇 년간 드라마 출연이 뜸했다. 몇몇 영화에 특별 출연하거나 간간이 예능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쳤지만 한동안 드라마는 떠나있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다가 나중엔 기운이 없어서 하고 싶은 일 못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하고 싶은 게 뭐였나' 곰곰 생각하다 보니까 긴장한 어깨가 펴지더라고. '왕의 여자' 이후에 쉬다가 리듬 잃을까봐 쇼 프로그램에 간간이 나갔는데 이 드라마는 재미있어서 하게 됐어요." 코맹맹이 소리로 애교 있는 웃음을 보여주던 KBS '서울뚝배기' 이후 사람들은 '김애경' 하면 아줌마 이미지를 떠올린다. 배운 것 없어 보이지만 남 눈치 안보고 정겨운 아줌마 역에 김애경을 당할 사람이 없다.
지천명을 넘긴 나이에 이제는 드라마에서 점잖게 체면도 차리고 우아한 옷도 입어보고 싶지 않을까. 김애경이 웃어넘기며 답한다.
"나이도 들었는데 재벌 사모님이나 점잖은 아줌마로 나오고 싶지 않느냐고 사람들이 물어보긴 하는데 나는 즐거운 게 좋아. 나도 남도 즐거운 게 좋더라고. 이제 와서 굳이 캐릭터 바꿀 생각은 없고 즐겁게 살고 싶어. 나 그래도 연극에선 주인공으로 수녀며 왕비며 안 해본 게 없다니까." 우악스러우면서도 정 많은 주인집 아줌마를 표현하려고 오른쪽 관자놀이에 점도찍었다. 눈썹 연필로 크기와 위치를 바꿔가며 점을 찍어보고 나서 결국은 수박씨만 하게 점을 그렸더니 훨씬 친근해졌다.
이번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또 쉴 생각이다. 연기가 쳇바퀴 같은 '일'이 될까 봐서, 그때 그때 하고 싶은 것을 놓칠까 봐서다.
"드라마에 주연이 없어도 안되지만 감초가 없어도 안될 것 같아. 목사님 설교도재밌어야 되잖아. 항상 '내가 잘해야 드라마가 잘될 텐데' 하는 마음으로 고민하고 고민해. 그렇지만 이거 끝나면 또 한동안 드라마 안 하고 즐겁게 살려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