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행기는 바람에 금새 뒤집어지기라도 할 듯 심하게 요동을 쳤다. 한시간반쯤 날았을까. 창문 밖을 내다보니 황량한 모래벌판 한가운데 바퀴자국들이 겹겹이 새겨진 길쭉한 곳이 눈에 들어온다. 사브와공항이다. 공항이라기보다 그냥 모래밭이다. 오전11시20분. 14인승 비행기에서 내려서자마자 ‘훅’ 하고 모래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AK소총을 든 여러 명의 얼룩무늬 군인들이 주위를 에워싼다. 조금 떨어진 3개의 군용텐트 속에서 이쪽을 쳐다보는 눈초리들도 따갑다. 일순 긴장감이 감돌았다. “웰컴.” 군인들의 얼굴에 순진하고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가 배어 나왔다. 방문객들을 경호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우리를 마중 나온 사람은 석유공사의 합작 파트너인 예멘 석유회사 와이콤의 살림 시뮬란(39)씨. 그는 불룩 나온 아랫배 밑에 찬 권총을 들춰 보이며 “오케이”라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무장강도와 외국인 납치를 막기 위한 이중삼중 경비다. 다시 4륜구동 짚차를 타고 한 30분 모래바람 속을 뚫고 달리자 저 멀리 기관포로 무장한 초소 뒤 철조망 사이로 파이프설비와 원유저장탱크, 컨테이너 박스들이 보였다. 드디어 예멘 4광구의 원유생산 사이트에 온 것이다.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모래와 흙산뿐인 이 곳이 바로 한국인의 힘으로 땅밑 석유를 길어올리는 ‘에너지 코리아’의 현장이다.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동쪽으로 270㎞ 떨어진 이곳 4광구는 한때 하루 1만 배럴의 석유가 콸콸 쏟아져 나온 유망한 유전지대였다. 하지만 4광구는 전쟁의 혼란 속에 10년 가까이 방치돼 지금은 겨우 하루에 수백배럴의 원유를 뽑아올릴 뿐이다. 현장 책임자인 아메드 바소단(59)씨는 “사우디의 석유회사인 아르코(ARCO)가 운영권자로 있던 지난 92년부터 3년간 원유생산이 절정을 이뤘다”며 “하지만 외국 석유회사들이 철수한 지 10년이 넘었고 요즘은 150배럴 밖에 안 나온다”고 말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4광구에는 아말과 동서 아야드 지역에 걸쳐 총 82개의 유정이 있다. 이들 유정에서 나온 원유는 모두 파이프나 차량을 통해 유전사이트, 즉 메인 펌핑 스테이션으로 모이게 된다. 저장된 원유들은 남쪽으로 200여㎞ 떨어진 항구인 루둠으로 보내져 유조선에 실린다.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함께 브리핑을 듣고 있던 박동배 석유공사 예멘ㆍ두바이 소장의 얼굴이 일순 어두워졌다. “유정에서 나온 원유에 가스가 너무 많이 섞여 나온다”는 보고를 들었기 때문이다. 박 소장은 “가스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빨리 손을 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유정 속의 기름이 땅속에서 다른 곳으로 빠져 나가면서 가스가 차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4광구의 추정 매장량은 약 4억배럴. 이미 확인된 가채 매장량만 3,500만배럴이다. 그런데 하루 150배럴이라니. 이 때문에 석유공사는 엔지니어 3명을 급파, 증산 프로젝트 수립에 나선 상황이다. 점심을 먹는 동안 “엔지니어팀이 오후3시께 도착한다”는 연락이 왔다. 전날 사나에서 함께 소주잔을 기울인 이상은 개발운영팀 과장 일행이다. 무반동포와 수류탄으로 무장한 경호차량들의 호위를 받으며 육로로 6시간을 달려 이곳 유전 사이트로 오고 있었다. 석유공사가 이 4광구, 더 나아가 예멘 유전에 다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전후 무렵. 양질의 대규모 유전들이 이미 서구 대형 오일메이저들의 손에 넘어가 있는 상황에서 후발주자인 한국석유공사는 틈새시장을 노릴 수밖에 없었다. 마침 유전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던 예멘은 좋은 베팅 대상이 됐다. 10년 전부터 정보수집과 인맥 쌓기에 노력해왔던 석유공사는 2005년 9월 토털 등 오일메이저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운영권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석유공사 최고의 ‘오일맨’으로 꼽히는 박일래 부장 등이 예멘 관계자들과 스킨십을 하며 돈독한 친분을 맺으며 사전준비를 철저히 한 결과였다. 석유공사는 이곳 4광구를 ‘제2의 마리브’ 광구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최대한 빨리 증산 계획을 실행, 하루 수만배럴의 원유를 캐는 광구로 만들겠다는 것. 오후2시반. 경비행기 이륙시간에 맞추려 발길을 돌리자 기계공 셰림 압둘라 살리(36)가 이별이 아쉬운 듯 손을 내밀었다. 황무지 한가운데 컨테이너 박스에서 먹고 자며 살인적인 더위를 견디는 예멘인 근로자의 검은 얼굴 위로 70년대 중동을 찾았던 한국인 근로자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경비행기에 오르며 박 소장은 “예멘은 외국인 납치가 빈번하고 부족 충돌이 잦은 위험한 나라”라며 “특히 이런 오지에서 유전개발을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박 소장은 그러나 “그동안 중동 유전개발에 석유공사가 거의 십년 넘게 공을 들여왔고 그 결실이 바로 눈앞에 있다”며 “본격적인 석유생산을 위해 전력투구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