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Upgrade 한국경제] '글로벌 짝짓기'로 무한경쟁 파고 넘자

GE같은 거대기업도 혼자 힘으론 생존보장 못해<br>해외시장 동반진출땐 리스크 감소효과 커<br>라이벌 기업과 협력도 파이 확대 긍정적 효과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경영진은 지난 1980년대 중반 북미 지역에 첫 해외공장을 지으면서 합작 파트너 선정을 놓고 고심 끝에 라이벌 기업인 GM을 선택했다. 당시 미국 자동차업계는 일본의 맹추격에 심각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어 도요타 입장에서는 반일감정을 누그러뜨리고 보호주의 장벽을 넘기 위해 GM라는 후원자를 등에 업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파트너로 선정된 GM은 공장 설립과정에서 미국 차업계의 거센 반발을 막아내고 정부를 설득해 여론을 바꿔주는 등 든든한 보호자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 같은 우여곡절 끝에 세워진 합작공장 ‘MUNI’는 이후 도요타식 경영기법을 접목시켜 성공적으로 자리잡았고 GM이 휘청거리고 있는 지금까지 도요타의 미국시장 공략거점으로 활약하고 있다. 최근 국내외 경영환경이 불투명해지면서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이 국내 기업들의 지상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는 리스크 경영이 중시되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 폭넓은 우호세력 확보와 외부자원 활용을 통해 돌발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막강 파워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영토 확장에 나서고 있는 터에 현지사정에 정통한 토착세력이나 탄탄한 기반을 갖춘 다국적 기업과의 전략적 유대관계 강화는 필수요소일 수밖에 없다. 진출 국가의 신뢰할 만한 파트너나 유력한 글로벌 파트너와의 동반 진출은 사업 안정성 확보에 큰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필요할 경우 국제적 압력을 행사하는 조정자 역할을 거뜬히 떠맡아주고 현지인들을 설득하고 중재함으로써 원활한 사업 추진을 가능하게 한다. 전세계 곳곳에 1,400여개의 현지공장을 거느리고 있는 코카콜라의 경우 해외에 진출할 때 해당 국가의 제조업자에게 원액을 판매하면서 제조권을 넘겨주는 정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외국업체의 시장잠식에 대한 반발을 줄이고 이익을 진출 국가에 돌아가도록 보이게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회사 측은 먼저 관리업무만 맡는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나서 현지 생산업자(바틀러)를 물색하러 다닌다. 바틀러를 고를 때는 무엇보다 현지시장에 대한 이해 수준과 평판을 최우선적으로 따져 행여 실패가 없도록 준비한다. 정반대의 실패 사례도 있다. 중국의 전자업체 TCL은 2003년 프랑스의 톰슨 TV사업부를 인수했다가 만성적인 적자를 견디지 못해 공장을 폐쇄하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글로벌 경영 노하우가 부족한 중국 기업이 무턱대고 해외 기업을 사들였지만 결국 현지 소비자의 마음을 사지 못해 무릎을 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잭 웰치 전 GE 회장은 일찍이 “자기 혼자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글로벌 시대에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GE와 같은 거대기업이라고 하더라도 독자적인 힘만으로는 생존조차 보장받기 어려운 게 냉혹한 글로벌 경영환경이다. 치열한 점유율 경쟁을 벌이는 동종 업계의 라이벌 기업이라도 협력관계를 잘 맺으면 오히려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 샌드위치 위기에 놓인 국내 기업의 입장에서는 폭넓은 연합전선 구축이 후발주자의 추격을 따돌리는 일종의 진입장벽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실제 미국 등 선진업체들의 경우 기술적으로 차별화가 가능한 분야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기업들에만 참여 기회를 열어주는 ‘클럽 비즈니스(club business)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최근 중동 특수가 일고 있는 GTL(Gas to Liquidㆍ액화가스생산) 플랜트 분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힐 만하다. GTL시장은 석유 의존도를 낮출 수 있어 고유가시대를 맞아 고부가가치사업으로 불린다. 하지만 유럽 및 일본의 건설업체들은 사업 경험을 갖춘 선진업체만의 컨소시엄을 강화해 후발업체의 진입을 최대한 차단하고 있다. 연합전선의 위력이 산업 현장에서 갖는 파워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도 이제 글로벌 시대를 맞아 원자재 확보나 마케팅 분야. 첨단기술 개발 등 모든 영역에 걸쳐 공세적인 제휴전략을 펼쳐야 할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현석 대한상의 상무는 “글로벌 기업들의 제휴는 이제 업종 간, 규모 간 장벽을 뛰어넘어 무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실제 제휴를 맺은 기업들의 실적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훨씬 뛰어난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외 기업들이 이처럼 앞다퉈 뭉치고 있는 것은 경기 사이클이 짧아지면서 독자적인 대응 자체가 쉽지 않은데다 대형화ㆍ통합화를 통해 힘을 키워야 한다는 절박한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포스코가 일본의 신일본제철과 제휴관계를 맺고 거대 철광석업체와 공동으로 가격협상에 나서는 것이나 국내 조선소들이 일본 철강업계와 후판가격 상승폭을 놓고 해마다 힘겨루기를 거듭하는 것도 일종의 생존게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와 관련, 최근 해외 경쟁사들이 과감한 투자와 제휴 전략으로 국내 업체를 추격하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의 신속하고 적절한 대응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박성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앞으로도 대만ㆍ일본 등 경쟁국의 생산규모 확대 경쟁이 지속될 것”이라며 “우리 기업은 신속한 투자와 신시장 진출로 일본과 대만 연합전선의 취약점을 공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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