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국가 시스템 개조하자] 10부. 자본시장 토대부터 다져라 <4> 증시 독버섯 제거를

주가조작 땐 모든 계좌 수탁거부·실명공개… "싹부터 잘라야"<br>증권범죄 사후처리 강화됐지만 예방 허술<br>질질끄는 형사처벌 앞서 행정제재 등 징벌<br>시세조종 세력 美처럼 아예 시장서 추방을

증권범죄합동수사단 현판식이 열린 지난 5월 서울중앙지검 별관에서 채동욱(왼쪽 세번째) 검찰총장 등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서울경제DB


지난해 3월9일 증권사 출신 전업투자자 등 작전세력 7명이 금융당국에 적발돼 검찰에 고발 통보됐다. 정치 테마주 등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 행위에 나선 혐의다. 이들이 사용한 기법은 특정 종목에 대한 수백 차례의 고가주문으로 투자자를 현혹시켜 부당이득을 취하는 이른바 '상한가 굳히기'로 지금까지 한번도 드러나지 않았던 신종수법이었다.

지난해 금융감독 당국에 신규 접수된 불공정거래 사건은 총 271건. 최근 4년 내 최대치다. 지난 2012년은 한해 거래일이 251일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하루 한건 이상 시세조종과 미공개정보 이용 등 불공정거래가 판친 이른바 증권범죄 전성시대였다.


이처럼 국내증시가 불공정거래로 얼룩지자 박근혜 정부가 주가조작 엄단 등 증권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금융당국과 검찰은 5월2일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꾸린 데 이어 오는 8월 중에는 금융위원회 내에 증권범죄 전담 조사부서를 신설한다. 금융감독원도 같은 달 자본시장1ㆍ2국 외에 특별조사국을 새롭게 만드는 등 증권범죄 사후처리 체계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흡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증권범죄를 엄단하겠다"고 밝힌 데 따라 이뤄진 과정이 사후조치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예방체제 구축 서둘러야=금융투자 업계 내에서는 "이제는 예방체제를 강화할 때"라는 목소리가 높다. 금융당국이 지금껏 추진한 방안이 예방보다 사후조사나 제재에 집중된 탓이다.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물론 조사과ㆍ특별조사국 등도 예방이 아닌 사후제재를 위한 기구다. 현재 추진 중인 특별사법경찰권 부여나 부당이득 몰수 등도 불공정거래 적발에 이은 제재를 위한 조치다.

예방활동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거래소와 증권사는 불공정거래 혐의가 적발된 투자자에게 수탁거부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한국거래소는 현재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를 적발했을 때 회원사(증권사)를 통해 '유선경고→서면경고→수탁거부 예고→수탁거부' 순으로 조치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빠져나갈 구멍이 많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 금융투자 업계 고위관계자는 "수탁거부의 경우 적발계좌 하나에 국한한다는 점에서 예방적 기능이 떨어진다"며 "대부분의 작전세력이 하나가 아닌 다수의 계좌를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효율성이 크게 저하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수탁거부 등 예방조치가 효력을 발휘하려면 적발된 투자자의 모든 계좌에 단 하루만이라도 매수에 한해 수탁거부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주가조작의 경우 초기 주식을 사들이는 데서 문제가 시작되는 만큼 예방 측면에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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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처벌 앞서 행정제재 필요=사후제재와는 달리 예방체계가 허술하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면서 금융투자 업계는 물론 국회에서도 다양한 예방책이 거론되고 있다. 6월14일 김재경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 일부 개정안이 대표적인 예다. 법안에는 미공개 정보이용이나 과다한 허수주문(거래체결 의사 없이 내는 주문) 등 시장질서 교란행위를 한 자에게 5억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의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 예방활동에 대한 근거를 법률에 명시하도록 했다.

김 의원 측 관계자는 "이번에 발의한 자본시장법 일부 개정안은 올 정기국회 상임위원회 통과 뒤 내년 시행이 목표"라며 "이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검찰의 형사처벌에 앞서 과징금 등 행정제재를 내려 이른바 작전세력에 '시장교란 행위가 적발된 것만으로도 징벌이 가해질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낼 수 있어 예방적 차원에서도 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증권범죄는 익명보장 예외로=불공정거래에 나섰던 회사 최대주주나 작전세력 등의 명단을 블랙리스트화해 외부에 알리는 방안도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지금껏 익명 처리되던 부분을 바꿔 외부에 알림으로써 투자자들에게는 적절한 투자정보로 활용하게 하는 한편 이들이 다시는 증시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물론 영국 금융감독국(FCA)에서는 이미 운영해 효과를 본 방안이라 국내증시 내부에서도 예방을 위해서는 이른바 작전세력의 실명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한 학계 관계자는 "SEC에서는 증권범죄에 대한 위법성이 증명될 경우 범법자는 물론 어떤 금융기관이 연루돼 있는지까지 다양한 정보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다"며 "국내에서는 위법사실이 확인돼도 해당 인물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익명을 보장해 투자자 보호에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이 인권을 존중하는 국자지만 주가조작 등 범죄에 한해서는 다른 입장으로 수사 결과 등을 공개해 주가조작 범죄자들을 아예 시장에서 추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현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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