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간을 끌어온 증권선물거래소(KRX) 상장이 사실상 중단 상태에 빠지면서 그 후폭풍이 만만찮다. 서울 여의도 거래소와 과천 정부청사를 오가는 ‘네 탓’ 공방에 그치지 않고 거래소 본사가 있는 부산시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부산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KRX상장지원범시민협의회’는 지난 4일 “상장 중단의 모든 책임은 정책 당국에 있다”며 “상장이 완료될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특히 각 정당의 대선 후보들에게 거래소 상장의 공약화를 요구하기로 해 자칫하다가는 거래소 상장 문제가 큰 정치적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인 거래소와 재정경제부의 움직임은 그리 급해 보이지 않는다. 서로 ‘할 테면 해보라’는 자세다. 김석동 재경부 제1차관은 6일 “증권거래소가 상장 추진을 유보했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에 대해 상당히 유감”이라며 상장 중단의 책임을 거래소 측에 돌렸다.
거래소도 기업공개추진단을 폐지하는 등 ‘우리는 할 만큼 했다. 더 이상 할 게 없다’며 공을 재경부에 넘기고 있다. 공익기금 조성 등 정부의 요구 사안을 착실하게 진행해왔는데 이제 와서 불가능한 조건을 내세우는 건 거래소 상장을 승인해줄 마음이 애초부터 없었다는 주장이다.
양측의 책임 전가 논쟁을 보고 있으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2년 동안 뭘 했길래 이제 와서 갑론을박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길 뿐이다. 그간 아무런 공감대 없이 해외투자가들에게 거래소 상장이라는 비전을 설명하고 다녔다는 말인가. 그것도 동북아 금융허브가 되겠다고 외치면서….
최근 만난 한 증권사 임원은 거래소 상장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에 대해 명쾌하게 이렇게 평가했다. “공익성ㆍ자율성 운운하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다 밥그릇싸움이죠. 국민ㆍ투자자들은 안중에도 없어요.” 양쪽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결국 ‘밥그릇을 지키느냐 빼앗느냐’는 다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양측의 이전투구가 ‘밥그릇 챙기기’나 증권가에 떠돌아다니는 말처럼 ‘고위 인사들 간의 감정 섞인 기싸움’이 아니길 바란다. 거래소 상장은 그렇게 한가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내와 해외투자가가 지켜보고 있는 중요한 결정이다. 국가신뢰도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거래소와 정책 당국은 다시 협의해 가부간 결단을 내려야 한다. 계획대로 상장이 추진되면 더할 나위 없지만 만약 상장이 어렵다면 그 이유를 사실 그대로 설명하면 된다. 그걸 들어주지 않을 투자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