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무대의 주인공으로 섰던 자신을 떠올렸기 때문일까.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연설을 하는 내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가슴속에서 배어나오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을까. 노 전 대통령의 표정에는 순간순간 쓸쓸함이 스쳐 지나갔다.
유난히도 굴곡이 많았던 5년의 임기를 마치고 노 전 대통령이 시민으로 돌아갔다. “대통령을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국민을 화들짝 놀라게 했던 노 전 대통령. 그는 임기 마지막날인 지난 24일 밤 참여정부의 전현직 공직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지면서 “강은 반드시 똑바로 흐르지 않는다. 좌우 물길을 바꾸면서 흐른다. 그러나 어떤 강도 바다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여느 휴일처럼 KBS 대하사극 ‘대왕세종’을 시청한 뒤 밤11시께 청와대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 노 전 대통령. 청와대에서의 마지막 잠자리는 미국 유학 중 최근에 일시 귀국한 아들 건호씨 가족과 함께 했다.
새벽5시.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는 마지막 날도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청와대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가족들과 함께 한 노 전 대통령은 이어 그의 ‘영원한 동지’인 문재인 비서실장을 비롯한 수석 비서관들과 티타임을 가지며 마무리 시간을 보냈다. 아쉬움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한 참모는 “대통령께 심경을 여쭤보니 ‘어제 다 말했다’며 별다른 말씀이 없었다”고 전했다.
오전10시30분. 대통령 전용 차량인 벤츠를 타고 청와대를 떠나는 노 전 대통령 부부를 직원들은 “대통령님 행복했습니다”라며 환송했다.
취임식장에서 배웅하는 이 대통령과 환한 웃음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눈 노 전 대통령은 곧장 고향인 봉하마을로 내려가기 위해 서울역으로 향했다. 서울역에서는 ‘대통령 노무현’을 만들었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노란 풍선과 함께 배웅했다. 그의 귀향길에는 참여정부 내각과 청와대 전현직 정무직 및 비서관, 동문과 지인 대표 등 160여명이 동행했다.
KTX 안에서 기자들과 만난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제일 하고 싶은 일’을 묻자 “책임 없는 생활을 즐겨보고 싶고 여유를 즐기는 것이 제일 하고 싶다”며 긴장의 순간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다시 한번 피력했다. 노 전 대통령은 “새 정부에서 특별히 잘못할 이유가 없다. 앞으로 잘해나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덕담을 건네면서도 “참여정부와 차별화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창조적 비전과 전략을 갖고 창조적 정치에 매진해주면 좋겠다”고 뼈 있는 주문을 했다.
밀양역 환영행사를 마친 노 전 대통령은 차량편으로 곧장 봉하마을로 이동했다. 퇴임 후 고향에서 생활하는 첫 대통령. 5년간의 고단함을 끝내고 돌아온 노 전 대통령을 고향사람들은 뜨겁게 환대했고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은 상기됐다.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가진 기자들과의 마지막 간담회에서 “다시는 승부의 대척점에 서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