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6월 29일] '씨비스킷'을 타고 달리자

몇 년 전 영화 ‘씨비스킷’이 국내에서 개봉됐다. 씨비스킷은 지난 1930년대 미국에 실존했던 경주마의 이름이다. 이 영화는 몸집도 작고 심지어 다리까지 절뚝거리는 말이 저마다 아픈 사연을 간직한 마주와 조련사ㆍ기수의 노력에 힘입어 최고의 경주마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려냈다. 흔히 대공황에서 미국을 구한 것은 뉴딜정책이라고 한다. 그러나 좌절의 늪에 빠진 미국 국민들의 정신적 버팀목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경주 때마다 4,000만 국민을 라디오 앞에 모이게 한 보잘것없던 한 마리 말이었다. 씨비스킷은 절망의 시절 미국 국민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었다. 지난해 9월 미국 월가의 탐욕으로 야기된 금융위기로 세계경제는 끝 모를 나락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영문도 모르고 죽는 물고기처럼 ‘앙급지어’의 화를 당한 일반 개개인의 삶도 속수무책으로 힘겨워졌다. 극심한 구조조정의 회오리 속에 선진국에서는 실직자들이 모인 난민촌이 80여년 만에 다시 등장하는가 하면 무료급식소는 몰려드는 노숙자들로 하루종일 장사진을 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경기침체의 그늘은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5월 말 기준 실업자 수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1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30ㆍ40대 직장인은 퇴출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취업난에 찌든 젊은이들은 의욕을 잃고 침묵하고 있다.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생계형 범죄가 부쩍 증가하고 심지어 삶을 포기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불황의 어둡고 긴 터널 속에서 우리 사회가 자신감을 잃고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일이 늘고 있다. 행복을 그리는 작가 앤드루 매튜스는 “정녕 마지막인 것만 같은 순간에 새로운 희망이 움튼다”고 말했다. 현재의 위기극복을 위해 정부에서 쏟아내는 각종 지원책이나 사회적 고통분담에 동참하려는 기업들의 노력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민 모두가 더 이상 낙담하거나 좌절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위기는 바로 보되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공황 시절 미국 국민들은 씨비스킷과 함께 달리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우리도 희망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현실과 싸워나간다면 현재의 위기도 결국 역사 속에서 우리를 담금질하며 스쳐갔던 많은 시련들 중 하나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씨비스킷을 타고 시련을 희망으로 바꾸는 위대한 질주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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