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세(사진) 전 금융감독원장이 "선진국 문턱에 선 한국 경제에 과거에 보지 못했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 불감증에 빠져 위기인 줄 모르고 있다"고 걱정했다.
권 전 원장은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과 고민을 담은 자신의 책 '성공하는 경제'에서 우리 경제가 직면한 70가지 현안과 과제를 정리했다.
권 전 원장은 먼저 부동산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인구구조 변화의 큰 흐름을 읽지 못한 정부와 주택건설 업체의 판단 미숙도 (부동산)시장 침체 장기화를 초래하는 데 한몫했다"면서 "공급자 중심의 주택정책이 미분양 아파트 양산과 전세가격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된다"고 말했다. 전세난을 두고서는 "정부의 임대주택 정책은 취약계층인 월세 가구에 맞춰져야 함에도 현실은 오히려 전세에만 집중돼 있다"며 은행들이 내놓은 '목돈 안 드는 전세대출' 시리즈와 전세 위주의 공공임대주택을 예로 들었다.
세금 정책에 대해서도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권 전 원장은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고 단언하면서 "무상복지라는 달콤한 이름으로 국민에게 무임승차 의식을 조장하거나 허황한 환상을 심어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부의 세법개정안과 관련해 "세금 무서운 줄 알자"며 섣부른 추진으로 무산됐던 소주세율 인상을 예로 들었다. 그는 "정책 당국자에게는 급할수록 돌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수부족 문제를 두고서는 "지하경제 양성화도 필요하지만 노출된 세원에 대한 과세 정상화에도 정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주택 임대사업자 과세 강화 ▦상업용 빌딩 임대소득 과세 ▦도심 빌딩의 과표 재점검 등을 주문했다.
정치권의 자세 변화도 주문했다. 권 전 원장은 "경제 정책의 무게 중심이 국회로 상당 부분 이동해 있다"며 "최근 경제민주화나 지하경제 양성화 관련 입법 추진과정을 지켜보면 정부의 무력감은 여실히 드러난다"고 진단했다. 또 "눈치 빠른 일부 부처나 공무원은 법령 제·개정이 필요한 경우 정부 입법보다 의원 입법 형태로 추진하는가 하면 야당이나 영향력 있는 일부 의원의 반대로 입법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면 아예 검토 대상에서 제외하는 보신주의 처세술마저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이 저축은행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돼 '금융강도원'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은 시절에 대한 소회와 억울함도 내비쳤다. 특히 사태 초기에 이명박 대통령이 금감원을 '질책성 방문'한 것을 두고 "대통령 방문은 많은 후유증을 낳았다. 차라리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을 청와대로 불러 강력한 주문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고 적었다.
행정고시 23회 출신인 권 전 원장은 재무부(현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 공직에 33년간 몸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