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코믹변신 한석규판 ‘불량주부 일기’

영화 ‘미스터 주부퀴즈왕’


문화는 당대 시대상의 반영이다. 그 최전선은 영화다. 90년대 신세대의 코믹하면서도 솔직한 부부 이야기를 그린 ‘결혼이야기’부터 PC통신이라는 당시로선 첨단 소재로 세련된 도시멜로를 그린 ‘접속’이 그 대표적이다. 2005년, 이제 얘기는 최근 새롭게 부각된 남성 전업주부로 넘어왔다. 29일 개봉하는 영화 ‘미스터 주부퀴즈왕’이다. 6년차 전업주부 진만(한석규). 아파트 아줌마들과 어울려 고스톱도 치고 수다도 떨고 살림 노하우도 알려주는 프로 주부다. 돈은 방송국 아나운서인 아내 수희(신은경)이 벌어 온다. 아내에게 아침밥을 차려주는 것도, 유치원에 딸아이를 데려다 주는 것도 주부 남편의 몫이다. 이자 한푼 더 벌려고 은행 적금 대신 동네 계를 부었던 진만에게 시련이 찾아온다. 계주가 진만이 타야 할 3,000만원을 들고 야반도주한 것. 그 돈은 장인의 병원비였다. 한 달 안에 3,000만원을 만들어야 하는 주부 진만, 과감하게 TV쇼 ‘주부퀴즈왕’ 대회에 출전한다. 영화의 조명은 단연 완벽 변신한 한석규에게 맞춰진다. 언젠가부터 인상 쓰는 심각한 작품에만 출연했던, 그래서 팬들에게 식상한 이미지만 안겨줬던 한석규는 작정하며 온 몸으로 망가진다. 퀴즈왕 출전에 나서며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은 여장 차림의 그에게선 몸부림 치는 변신 욕망을 읽을 수 있다. 할인마트에서 반값에 파는 물오징어 한 봉지에 집착하고 곗돈을 날려 울부짖는 그는 관객과 웃음을 나누고 싶다고 절절히 말한다. 그의 시작이 10여년 전, 우스꽝스런 치과의사 ‘닥터봉’이었다는 걸 새삼 실감할 만 하다. 하지만 한석규가 망가지는 것만으로 관객을 붙잡아두기엔 한계가 있다. 사실 남성 전업주부라는 소재는 만화, TV드라마 등에서 이미 써먹어 그리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2005년 가을에 이 소재를 다루겠다 마음먹었다면 그저 우스꽝스럽고 신기한 소재가 아닌, 관객들의 공감대를 넓힐 만한 시도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영화 속 남성주부는 ‘주부퀴즈왕’ TV쇼를 위한 소품에 불과하다. 후반부 만회하려 주부의 위상을 애써 강조하는 ‘계몽적’인 대사는 영화와 어울리지 못한 채 관객들과 따로 논다. 이쯤 되면 영화의 포인트는 확연해진다. 남성 주부의 애환이나 우리 사회 고정관념에 대한 전복의 재미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는 작품이다. 한석규의 망가진 변신이 궁금한 관객에겐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재미를 준다. 기대하지 않는다면 실망하지도 않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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