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로의 글은 일상적이나 결정적인 사건들, 그런 에피파니(Epiphany)를 다루면서, 이를 둘러싼 이야기를 조명하고 실존적인 문제를 섬광 같은 번뜩임 속에 드러낸다."
10일 스웨덴 한림원이 앨리스 먼로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밝힌 이유다. '에피파니'란 진리의 순간적이고 예술적인 것을 외부로 드러낸다는 의미를 지닌 문학 비평 용어다.
먼로는 캐나다 국적으로는 처음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캐나다 출신인 소설가 솔 벨로가 1976년 문학상을 받았지만 그의 국적은 미국이었다. 여성으로는 13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노벨문학상 발표를 하루 앞두고 영국 도박사이트 래드브룩스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배팅한 소설가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수상 확률(odds) 40%. 먼로의 확률은 25%였다. 6번째로 높은 수상확률 10%를 기록하며 국내 많은 독자들의 기대를 모았던 시인 고은의 수상은 올해도 무산됐다.
10대부터 습작을 해 온 먼로는 1950년 대학 재학 중에 19세 나이로 첫 단편 '그림자의 세계(The Dimensions of a Shadow)'를 펴냈지만 본격적으로 작가로 활동한 것은 30대에 접어든 이후다.
이후 먼로는 모국인 캐나다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며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캐나다에서 받은 세번의 총독문학상과 두번의 길러상을 제외하고도, 미국에서 전미비평가협회상, 오헨리상, 펜ㆍ맬러머드상 등을 받았다. 특히 2009년에는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했다.
먼로의 작품은 섬세하고 탄탄한 서사와 명료하고 현실적인 심리묘사를 바탕으로 주로 여성인 주인공들의 감성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보통 온타리오주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일상을 덤덤하게 서술하면서 인물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겪는 긴장된 인간관계와 윤리적 충돌 등 묵직한 주제들을 다룬다.
이런 스타일 때문에 캐나다 평단에서는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를 빗대 '캐나다의 체호프'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난해 먼로가 열세번째 단편집 '디어 라이프'(문학동네ㆍ근간)를 내놓자 유수의 언론들이 '작가로서의 능력이 최고조로 발휘된 작품'이라며 찬사를 쏟아냈다. 뉴욕타임스는 "은밀히 고조된 극적인 순간들이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스르르 빠져나간다. 묘사는 정확하고 간결하다. 분노와 슬픔의 감정은 날것 그대로가 아닌 절제된 형태로 나타난다"고 평가했다. 또 시카고 트리뷴은 "더없이 훌륭하다…다른 어떤 작가도 이렇게 짧은 분량 안에 이렇게 많은 것들을 담아내지 못할 것이다. 앨리스 먼로의 정교한 문장들은 평범한 표면 아래 풍부한 광맥을 숨기고 있다"고 극찬했다.
하지만 '디어 라이프'는 그의 최신작이자 마지막 작품이 됐다. 그가 올 들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절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우리시대 단편소설의 대가' 앨리스 먼로의 국내 인지도는 낮다. 현재 인터넷서점에는 2010년 출간된 '행복한 그림자의 춤'과 '미움ㆍ우정ㆍ구애ㆍ사랑ㆍ결혼'(2007년), '떠남'(2006년) 3권 정도만 판매되고 있다. 절판된 '오페레타 짝사랑…그리고 슬픈 연인'과 곧 출간될 것으로 알려진 최신작 '디어 라이프'(문학동네)를 합쳐도 고작 5권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