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되면 그것보다 더 큰 상이 있겠습니까.”
오는 2009년 6월 서울 세종로에 들어설 예정인 ‘광화문 광장’ 조성에는 ‘숨은 1등 공신’이 있다. 내년 환갑을 앞둔 유길상(59) 서울시 기술심사담당관이 그 주인공. 그가 세종로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95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그해 그는 조순 초대 민선 서울시장에게 세종로의 은행나무를 뽑겠다는 계획을 보고하는 자리에 배석했다. 일제가 왜곡한 역사가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세종로와의 ‘10여년 인연’이 시작됐다.
그는 세종로 관련 자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갔다. 종로구청과 고서점 등을 십여 차례나 다니며 자료를 모았고 ‘세종실록’을 비롯해 읽은 책만도 수십 권에 이른다. 체계적인 연구나 조사가 없다 보니 자료수집이 쉽지만은 않았다. “아무리 구하려고 애를 써도 찾을 수 없던 사진을 노점상에서 우연히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하지만 육조거리를 되살리고 축선을 복원해 광화문 광장을 조성하는 일은 순탄치 않았다. 조 전 시장은 ‘탁상행정의 표본’이라며 완강히 반대했고 이명박 전 시장 시절에는 시민들의 부정적 여론과 문화관광부의 반대로 두 번의 ‘좌절’을 맛봐야만 했다. 그러다 참여정부에서 우연히 기회를 얻어 청와대에 세종로 역사를 보고하게 됐고 지난해 말 마침내 광화문 광장 조성계획이 발표됐다.
“오세훈 시장 취임 후 업무보고를 하면서 ‘이번이 삼세판인데 꼭 이뤄달라’고 윽박지르다시피 했습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도 만나 직접 설득했지요.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애국하자는데 누가 반대하겠냐’며 유 청장이 흔쾌히 승낙해주더라고요.” 이후 유 청장은 조성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그는 얼마 전 그간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2005년 발간한 ‘세종로 이야기’라는 책을 상당 부분 보완해 개정판을 냈다. 오 시장이 직접 추천의 글도 써줬다. 3,000부가량을 찍어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그는 “다 키운 자식을 장가ㆍ시집보내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광화문 광장의 의미를 물었다. 그는 “단순히 광화문 거리 중간에 휴식공간이 생기는 게 아니다”라며 “서울이라는 도시의 역사와 철학이 정립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달 말이면 34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공로연수에 들어가는 그는 “나중에 손주가 크면 광화문 광장에 데리고 가 할아버지가 만든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들려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십여년간 ‘역사 바로 세우기’에 매달려온 우직한 공무원의 소박한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