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그동안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적자를 방관(?) 하다 8년 만에 예산 감축에 나선 것. 이대로 재정적자가 커지면 경제에 큰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미 행정부가 재정적자의 주요인이었던 감세정책을 그대로 유지한 채 예산 감축을 추진하고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예산 삭감안의 주내용이 노인 등 경제약자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것이어서 야당과 빈민층의 거센 반발로 추진력이 떨어질 전망이다.
AP통신에 따르면 미국 하원은 1일(현지시간) 향후 5년간 390억달러(약 38조원)의 예산을 삭감하는 법안을 찬성 216대 반대 214로 가까스로 통과시켰다.
이번 법안은 지난해 연말 하원에서 이미 통과된 바 있지만 상원에서 내용이 약간 수정돼 이날 하원에서 재투표 끝에 통과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예산 삭감안이 통과된 직후 “의회가 정부지출을 줄이고 재정적자를 오는 2009년까지 절반으로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법률을 통과시켰다”며 만족을 표시했다.
예산 삭감안의 골자는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의료보장인 메디케어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메디케이드의 규모를 줄이고 학자금 대출 지원금을 삭감하는 것이다.
새 예산안에 따르면 주 정부는 의료보험료를 올리거나 의료보장의 범위를 줄일 수 있으며 앞으로 5년간 메디케이드와 메디케어 재원은 각각 0.4%, 0.3%씩 줄어들게 된다.
미 의회예산국은 의료보장 축소로 메디케이드 가입자의 20%에 해당하는 1,300만명의 빈곤층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정했다.
공화당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로 의료보장 비용이 급증할 것으로 우려되는 시점에 정부지출을 줄이는 중요한 첫 발을 내딛었다고 평가했다.
부시 행정부도 법안 통과를 계기로 제정적자 축소 노력을 가속화한다는 방침이다.
부시 대통령은 오는 6일 2007년 예산 계획을 발표할 예정인데 의료보장의 추가 축소와 농업 보조금 삭감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민주당은 이번 예산 감축이 노인 및 빈곤층에 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특히 의료보장의 혜택을 받는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대신 거대 제약사 및 보험사의 이익만 지켜주는 꼴이라며 부시 행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민주당은 또 부시 행정부가 예산 삭감에도 불구하고 700억달러 규모의 감세 연장안을 추진하는 점을 고려할 때 재정적자가 오히려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테니 호이어 민주당 하원의원은 “정부지출은 고작 390억달러 줄이면서 700억달러의 감세를 추진하면 재정적자가 악화되리라는 것은 초등학교 6학년만 되도 아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은 지난해 3,186억달러의 재정적자를 기록했으며 올해 재정적자는 4,0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