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면죄부로 전락한 기부


지난해 2월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명 전 법무법인에서 2년간 6억원대의 연봉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며 전관예우 논란에 시달렸다. 정 총리는 이를 잠재우기 위해 인사청문회에서 이를 사회에 환원하기로 하고 취임 이틀째 1억원을 기부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17개월간 16억원을 받아 같은 논란에 시달렸던 황교안 법무장관도 청문회에서 기부 의사를 밝히며 검증의 칼날을 피해나갔다.


그로부터 1년 3개월 뒤 새롭게 지명된 안대희 국무총리 내정자의 행보는 마치 데자뷔(처음 봤음에도 이미 보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고 느끼게 되는 심리상태) 같다. 안 내정자가 대법관 퇴임 후 5개월간 16억원이 넘는 수익을 거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에 대한 여론이 날로 악화됐다. 그러자 그는 지난 26일 11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하며 급한 불 끄기에 나섰다. 총리 지명 전에도 변호사 수입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이 중 3분의1인 4억7,000만원을 먼저 기부했다는 해명도 덧붙였다.

관련기사



인사청문회 철마다 반복되는 고위공직자 후보들의 때늦은 기부선언을 보면서 국민들은 꺼림칙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전관예우·관피아 등 잘못된 관행으로 거액을 번 뒤 나중에 문제가 됐을 때 돈으로 잘못을 씻으면 된다는 논리가 그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기부는 중세시대의 면죄부와 다를 바 없다.

면죄부로 전락한 기부는 기부문화가 성숙하는 데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선의의 자선가들이 나타나도 사람들은 뒤에 무슨 사연이 숨어 있을지 색안경부터 먼저 낀다. 그가 '노블레스오블리주'를 실천했다며 박수를 보내는 건 그다음 일이다. 사회를 위해 재산과 시간을 기꺼이 희생한 자선가들이 자연스럽게 사실을 밝히고 존경을 받는 풍토도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전관예우가 관료사회의 최대 적폐라면 고위공직자들의 '지각 기부'에 더 이상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된다. 면죄부를 남발하던 중세 가톨릭 교회도 내부 부패를 감당하지 못하고 추락하지 않았던가. 기부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고위공직자들의 기부는 안 내정자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