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 미국 금융계에서 시작된 세계적 경제위기는 지구촌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전세계 모든 나라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번 위기는 어느 나라에나 상당한 불안요소가 되고 있지만 유로화보다는 달러에, 또 제조업보다는 금융 등 서비스산업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더욱 심각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제조업 기반이 탄탄해 세계 500대 중소기업 중 400개 이상의 중소기업을 보유하고 있다는 독일은 이번 경제위기에 가장 타격이 적은 나라로 분류되고 있다.
제조업 탄탄하면 위기에도 굳건
한편 석유나 광물ㆍ곡물 등 에너지 및 원자재 보유 강국들도 사정이 그리 좋지는 않다. 주요 원자재의 국제 가격이 기축통화인 달러로 표시되기 때문에 달러가치의 하락은 그들의 수입감소로 이어지고 가격을 올리면 그만큼 수요가 줄어드니 결국 감산이나 수출량을 줄이는 소극적 정책을 취하게 됐다. 하지만 이들 국가가 쥐고 있는 것은 화폐가 아닌 실물이므로 세계적인 경기침체인 이른바 ‘D의 공포’가 몰려와도 가장 속이 든든한 나라들이 바로 이들 자원 부국들이다. 그들에게는 세계 경제위기가 또 한번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들 중동ㆍ아프리카ㆍ독립국가연합(CIS) 등 세계적 자원 부국들은 몇 가지 공통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막대한 자원의 수출로 돈은 벌었으나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주택ㆍ교통ㆍ교육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해결할, 그것도 단기간에 해결할 도시를 만들어야 하는데 경험과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가능한 짧은 시간에 세계적 수준의 신도시를 건설할 수 있는 경험과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 필요한데 하나의 신도시를 건설하는 데 30년 넘게 걸리는 유럽 기업들의 신도시 건설모델은 이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가 힘들었다. 결국 이들이 내린 결론은 최근까지 분당ㆍ일산ㆍ판교ㆍ동탄 등 대규모 신도시를 단기간에 훌륭히 완성한 경험이 있는 한국토지공사의 신도시건설 기술과 노하우를 수출해달라는 것이었다.
지금 토공에는 지난해 12월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7,200만㎡ 규모의 신행정복합도시 건설사업총괄관리(PMㆍProgram Management)를 맡긴 것을 시작으로 세네갈ㆍ리비아ㆍ키르기스스탄 등 자원부국들의 신도시기술 수출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바야흐로 한국의 신도시 건설기술의 해외 수출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이 건설기술의 수출은 단순히 노하우만 수출하고 프로젝트 완성을 관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후 직접 시공을 맡게 될 건설기업들의 각종 표준을 정하기 때문에 소속 국가의 기업들이 해당 프로젝트에 진출하기가 그만큼 쉬워져 그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실제로 이번 아제르바이잔 신도시 건설의 총사업비는 건축비용 포함 총 78조원 정도이고 국내 건설업체가 이 중 50%의 물량만 수주한다고 가정해도 39조원 상당의 수출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자원부국과 공조, 원자재 확보를
여기서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아무리 세계경제가 요동쳐도 에너지와 원자재의 안정적 공급만 확보된다면 우리 경제는 든든한 방벽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들 자원 부국과 적극적으로 신도시 수출계약을 성사시키되 토공 외에도 석유공사나 기타 에너지 관련 기업, 정보기술(IT) 기반 기업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진출하면서 에너지 및 원자재 확보의 루트를 확보해야 한다.
이것은 치열한 세계경쟁에서 위기의 순간 우리나라의 구명줄이 될 중요한 사업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공기업이 앞장설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일관된 정책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며 공기업은 각자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기회를 잃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