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전세 해법, 발상을 바꿔라


과거에는 전세가격이 오르면 곧 주택 매매가격이 오른다는 신호였다. 특히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의 60%를 넘어서면 전세수요의 매매전환은 더욱 속도를 냈다.

그러나 최근에는 매매가격은 물론 월세가격도 하락하는데 유독 전세가격만 상승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감소하고 공급은 늘어야 정상인데 현재의 전세시장은 이러한 기초적인 원리도 작동되지 않는다. 일선 중개업소에 따르면 '전세'주택 자체가 없다고 한다.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려는 임대인들이 늘면서 전세주택은 점점 반전세나 월세주택으로 변하고 있다. 그나마 전세주택이 나와도 집주인의 대출이 많은 전세주택은 '깡통 전세'라고 임차인들이 기피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온전한 전세주택'은 귀할 뿐만 아니라 가격도 비싸다. 그런데도 전세수요는 더 늘고 있다. 자금이 부족해 전세로밖에 살 수 없는 가구뿐만 아니라 주택을 구입할 능력이 있어도 전세로 거주하려는 수요까지 추가되고 있다.

유주택자 전세인구 너무 많아 시장 왜곡


과거에 전세거주자는 대부분 무주택가구였지만 최근에는 다른 지역에 주택을 보유하면서 다른 주택에 전세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수도권 전세가구 4분의1이 타지에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유주택자다. 전세보증금 역시 과거에는 주택마련을 위한 저축자금으로 자기자본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세보증금이 부채가 아닌 경우가 드물다. 이러다 보니 전세를 매매로 전환하려면 보유한 주택을 처분하던지 아니면 집값의 절반이상을 추가로 대출받아야 한다. 다른 지역의 매매가격보다 높은 전세보증금을 지불하는 고소득층 전세가구도 많다. 강남의 신축 30평형대 아파트의 평균 전세가격은 6억~8억원 수준이다. 이는 서울시 전체 평균 주택 매매가격의 두 배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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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으로 전세시장의 문제 해결은 전세용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수요를 줄이면 된다. 그러나 매매가격 상승이 전제되지 않으면 전세주택 공급을 확대하기 쉽지 않다. 수요 역시 매매나 월세로의 전환을 유도할 수는 있지만 전세가구의 사정이 제각각이다 보니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세지원 줄여 월세로 적극 유인 필요

기존 정책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지금의 전세시장 문제는 우리의 주택임대시장이 구조적으로 변하고 있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성장통'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전월세 대책은 임대차 시장의 구조적인 변화에 적응하기보다는 오히려 변화를 막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최근 월세가격과 월세 전환율이 하락하고 있다. 월세주택 공급이 증가하면서 시장기능이 작동하는 것이다. 월세로의 전환은 싫고 전세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향후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도 내 집 마련으로 돌아서는 가구들도 있다. 시장이 스스로 전세보다는 매매나 월세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우선 저소득 계층에게는 현재와 같은 저리의 전월세 보증금 대출지원이 지속돼야 하고 아울러 저렴한 전월세 주택의 공급확대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주택구입능력이 있어도 전세로 머무르는 임차가구에 대해서는 전세지원은 축소하고 매매나 월세로의 전환을 적극 유인할 필요가 있다. 월세시장이 전세보다 불리하다는 소비자들의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서는 월세에 대한 소득공제 확대, 월세 임대료 보증제도, 임대주택관리제도 및 임대사업자 지원방안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이미 준비 중인 것도 많으니 좀 더 분발한다면 월세시장 정착이 앞당겨질 수 있다.

반복되는 것 같지만 조금씩 진화하고 있는 전세시장의 문제, 이제 단순히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달라진 임대차 시장에 어떻게 적응할지 고민하면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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