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7일(현지시간) 내년 중순쯤 기준금리 인상에 들어간다는 명백한 신호를 주면서 출구전략 시동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 하지만 연준이 금리인상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해 글로벌 금융시장이 모처럼 환호했다.
연준은 이날 이틀 동안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종료 뒤 발표한 성명서에서 "양적완화 종료 뒤에도 '상당 기간(considerable time)' 초저금리를 유지한다"는 포워드 가이던스(선제 안내)에서 '상당 기간'이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대신 통화정책 정상화에 '인내심을 가질 것(be patient)'이라고 밝혔다. 특히 연준은 "새 가이던스는 상당 기간 초저금리를 유지하겠다던 기존 성명서와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 역시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용어를 사용했다고 연준의 통화정책 의도가 바뀐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상당 기간이라는 표현을 삭제했지만 여전히 유효하다는 교묘한 레토릭(외교적 수사)을 구사한 셈이다. 이는 예상 밖의 비둘기적 신호로 해석돼 글로벌 금융시장은 일제히 환호했다. 이날 뉴욕 증시에서 3대 지수는 2% 안팎의 급등세를 보였다. 18일 일본 닛케이225지수가 2.3% 급등하는 등 아시아 증시도 대부분 상승세를 보였다.
도이체방크는 이날 "인내심과 상당 기간이라는 용어를 함께 사용한 것은 금리인상이 눈앞에 다가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바클레이스도 "연준의 첫 금리인상 시점으로 내년 6월이라는 기존의 전망을 유지하지만 더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연준 위원들도 앞으로 2년간 기준금리가 지난 9월 전망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연준에 따르면 위원들의 내년 말 기준금리 전망치 평균은 1.125%로 9월 1.375%보다 낮아졌다. 오는 2016년 말 기준금리 전망치도 기존 2.875%에서 2.5%로 내렸다. 아울러 연준은 내년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올 9월의 1.6~1.9%에서 1.0~1.6%로 크게 낮췄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대다수는 연준이 내년 6~7월쯤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날 옐런 의장의 발언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전반적으로 비둘기적 목소리가 강한 가운데 곳곳에 매의 발톱도 드러나고 있다. 옐런 의장이 통화긴축을 서둘지 않겠다면서도 내년 중순쯤 금리인상을 기정사실화하는 고난도의 '하이브리드(이종 결합)' 화법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이날 옐런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최소한 2차례의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라며 "첫 금리인상 이후에도 통화정책은 완화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년 상반기 FOMC 정례회의가 1ㆍ3ㆍ4ㆍ6월에 예정돼 있는 점을 고려하면 금리인상이 아무리 일러야 내년 4월에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식시장과 달리 채권ㆍ외환 시장은 옐런 의장이 내년 4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데 주목했다. 이날 미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성명서 발표 직후 2.11% 수준에서 등락을 거듭하다 기자회견 동안 상승폭이 커지더니 전달보다 0.08%포인트 오른 2.14%로 마감했다. 또 주요 통화 대비 미 달러화 가치도 상승했다. 옐런 의장이 미 경제에 낙관론을 펼친 것도 매파적 신호로 해석됐다. 그는 "앞으로 실업률이 더 떨어지고 고용시장이 개선될 것"이라며 "최근 유가하락에도 인플레이션율이 궁극적으로 2% 목표치에 도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옐런 의장이 다소 엇갈린 메시지를 주면서 전문가들은 앞으로 나올 경기 지표가 기준금리 인상 시점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옐런 의장도 이날 "통화정책의 경로는 정해진 게 아니고 고용·물가 등의 변화에 따라 신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