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3인의 이색 새해소망] "올핸 푹 쉬었으면..."

「올해는 제발 우리를 쉬게 해주세요.」이규홍서울민사지법부장판사(합의50부), 정병석노동부고용총괄심의관, 유창현 성업공사채권인수부장 등 이 세사람의 새해 소망은 소박하다. 일거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공직사회건, 기업이건 구조조정 바람으로 모두가 「일자리」를 걱정하고 있는 마당에 그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사정을 알고 보면 이해가 간다. 이들은 지난 한해동안 평일은 물론 휴일에도 출퇴근 시간을 잊고 살아왔다. 그러니 쉬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올만도 하다. 그러나 이들이 편해지고 싶다는 소망은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정신없이 달려온 이들의 지난 1년 생활은 망가진 우리 경제의 축소판이기도하다. 그들이 편해지면 우리경제가 그만큼 건강해졌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쉬고 싶다는 이들의 이야기가 귀에 거슬리기는 커녕 오히려 반갑게 들린다. 서울민사지법 합의50부에게 무인년 한해는 악몽과 같은 시간이었다. 李부장판사를 비롯해 5명의 판사와 5명의 전문위원들에게는 하루가 48시간이라도 부족할만큼 바빴다. IMF 한파의 직격탄을 맞은 기업들의 법정관리·화의·파산신청과 소비자 파산이 봇물을 이뤘기 때문이다. 지난 한해동안 처리한 사건은 무려 300여건. IMF이전 몇년 동안치에 해당하는 것이다. 합의50부 판사는 당초 4명이었으나 지난 9월에 1명이 더 충원됐다. 그러나 밀려드는 일거리를 처리하느라 허덕였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점심·저녁을 구내식당에서 해결했지만 그래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기했다. 출근후 법원이 문을 닫는 오후 5시까지는 기업 관계자·관리인·변호사들을 만나야했고, 그 후에는 낮에 처리할지 못했던 기록들을 검토하느라 새벽까지 일하기 일쑤였다. 기아자동차·대농·쌍방울·나산·거평 등등…. 이들의 손을 거쳐 처리된 일일이 꼽을 수없을 만큼 많은 기업은 우리경제가 어떤 상태였나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합의50부의 수석법관 오석준 판사는 『몸이 피곤한 것은 그렇다치고 「이러다가 남아나는 기업이 있을까」, 「우리 경제가 다시 회생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밤잠을 못잔 적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성업공사 柳부장은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뒤치닥거리에 한해를 다 보냈다. 그가 쉰 날은 음력설과 추석연휴가 전부였다. 토·일요일에도 밤 12시가 넘어 퇴근했고 어쩌다 그 전에 퇴근하면 감지덕지였다. 성업공사가 지난 한해동안 금융기관에서 인수한 부실채권은 33조6,000원 규모. 이 채권은 柳부장의 지휘로 사실확인작업을 거쳐 해당부서나 지점으로 이관됐다. 채무자 1명에 대한 부실채권을 인수할 때 확인해야하는 서류는 줄잡아 50쪽을 넘는다. 지난해 柳부장이 서류를 통해 만난 채무자가 10만명을 넘는 까닭에 채권인수부가 들쳐본 서류는 무려 500만쪽에 이른다. 지난해 9월 5개은행 퇴출 때에는 보름동안 140명 전직원이 밤샘작업을 하기도 했다. 柳부장에게 출퇴근 시간은 의미가 없었다. 하루 3~4시간의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항상 근무중인 셈이었다. 柳부장은 『이런 생활을 겪으면서 일요일 새벽에 등산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이것은 취미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고 말했다. 쓰러질래야 쓰러질 수도 없어 하는 수 없이(?) 산에 오르며 체력을 유지했다는 설명이다. 실업대책 마련을 주도해 온 노동부의 鄭국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낮에 직원들 얼굴을 거의 보지못하고 1년을 보냈다. 그가 참석해야 하는 실업대책 관련 외부회의만도 10여개에 달했기 때문이다. 鄭국장은 직원회의나 결재 등 내부업무는 주로 밤시간을 이용했다. 고용총괄실 직원들도 이를 당연시했다. 다른 부처의 실업대책을 맡고 있는 공무원들도 비슷한 상황이라 밤 8~9시에 전화를 걸어 업무를 협의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는 『지난 1년동안 이런 생활을 하면서 위궤양이 생겼고 부하직원들중에 격무로 쓰러진 사람도 여럿 생겼다』고 전했다. 李부장판사, 鄭국장, 柳부장이 새해에는 편하게 직장생활을 하기를 기대해보자. 그러면 부도와 소득감소, 고용불안의 먹구름에 짓눌린 기업과 우리 모두도 편하게 될 것이다. 【윤종열·이학인·이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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