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는 피하고 봐야죠. 이젠 정말 ‘외로운 길’로 접어든 느낌입니다.” (삼성그룹의 한 임원)
삼성의 고민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사회 일각에서 불거진 ‘반(反)삼성’ 내지는 ‘삼성 견제’ 심리가 정치권까지 파고들면서 이제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형국이다.
특히 지난 27일 노무현 대통령이 금산법 논란과 관련해 “삼성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며 ‘사회적 공론’을 강조한 데 이어 국회에서도 사상 처음 이건희 삼성 회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 삼성을 둘러싸고 모든 파워집단이 공박을 가하는 모습이다.
삼성 측은 일단 금산법 논란과 관련한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하면서 말씀하신 대통령의 뜻과 의지를 볼 때 국회 논의과정에서 좋은 타협점을 찾아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의미가 아니겠느냐”는 공식입장을 내놓았다.
과거 금융계열사들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취득 과정에는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으며 과거의 위반사실에 대해 새로운 규제(초과 지분의 강제매각 등)를 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등의 논리를 내세워 대립각을 세우던 것과는 사뭇 다른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이는 대통령까지 나서 “삼성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발언을 한 마당에 계속 법적 논리 등만을 내세워 버티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행간을 엿보면 대통령이 넘긴 ‘공’을 무작정 받아 스스로 해법을 내놓기보다는 향후 정부와 정치권의 후속조치를 지켜보면서 차선책을 모색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단 시간을 벌면서 상황을 좀더 지켜보자는 의도가 강한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지배구조에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상황을 앞에 두고 뚜렷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삼성 관계자의 말이 이를 반증한다. 내부적으로 이런 저런 검토는 하고 있지만 경영권에 대한 악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사회적 공론’에 최대한 맞출 수 있는 묘안이 과연 있겠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삼성이 현재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모두 수긍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과거의 법적 행위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강제처분 명령을 사후 신설해 소급 적용할 경우 재산권 문제 등 법적 신뢰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금산법의 취지가 ‘계열 금융사를 통한 지배력 확장 방지’에 있는 만큼 의결권 제한만으로도 충분히 이를 실현할 수 있다”고 강변했다.
그는 “기업이 경영권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에 대해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 개진하는 것은 정당한 경영활동의 일환”이라며 “이를 두고 ‘입법 개입’ 논란 등이 일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상황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오는 10월10일 국회 재경위 국감 증인으로 채택된 이 회장이 출석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일 과거 폐암치료에 따른 정밀진단을 위해 출국한 이 회장은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MD앤더슨암센터에서 진단을 받은 뒤 허리케인 리타를 피해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겼으며 조만간 다시 휴스턴으로 돌아가 추가 진단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