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잠재우기 위해 금리인상을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7일 콜금리를 동결, 현상황에서는 경기회복이 최우선 과제임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8개월째 연 3.25%로 콜금리를 동결하면서도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경기회복을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오히려 실물부문의 거품만 키움으로써 통화정책의효용성을 둘러싼 논란은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금리동결 결정에 앞서 정부가 미리 `금리인상 절대 불가'라는 입장을표명해 결과적으로 금통위가 정부의 의중을 추인하는 좋지 못한 모양새를 띤 것도두고두고 논란이 될 전망이다.
◇경기 최우선 통화정책 의지 재확인
부동산 과열, 내외 금리차 역전 등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콜금리를 동결한 것은경기 회복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올들어 수출 증가세는 예상보다 큰폭으로 둔화된 반면 이를 보완해줄 것으로 기대된 내수 경기의 회복은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정부가 5%대 성장목표를 포기하고 4%로 낮춘데 이어 한은도 최근 성장률전망치를 4.0%에서 3.8%로 하향 조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마저 올리게 되면 미미한 내수 회복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격이 돼버린다.
작년말 현재 개인부채 총규모는 555조8천85억원으로 만일 금리를 1.00% 포인트올린다고 가정하면 연간 5조6천억원 정도의 이자부담이 발생하게 된다.
콜금리 인상→개인 가처분소득 축소→소비 위축→내수 회복 지연으로 이어진다는 부정적 시나리오를 선택할 수는 없다는 점을 통화당국이 거듭 확인한 셈이다.
당장 금리를 0.25%포인트 올린다고 가계의 이자부담이 커지겠느냐는 반론도 있지만, 수치가 문제가 아니라 긴축적인 통화정책으로 선회한다는 의미 자체가 시장에미칠 충격이 막대하다는 점이 우선적으로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금리인상 압박속 8개월째 현상유지 이번 금통위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시장 상황은 조만간 금리인상이 단행될 것으로 전망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부동산 열풍을 불러온 원인 가운데 하나로 `저금리의 장기화'가 집중적인 비판을 받고 있는 만큼 8월중 발표될 부동산시장 안정화 대책의 성공을 위해 통화정책측면에서도 보조를 맞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미 채권시장에서는 이번 금통위에서 금리인상이 전격적으로 단행될 것으로 예단, 일부 딜러들이 무리한 베팅에 나서면서 3년물 국고채 금리가 4%대를 웃도는 양상을 나타내기도 했다.
게다가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우리나라와 같은 연 3.25%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등 선진국 대부분이 금리인상 기조를 보이고 있어 내외금리차 확대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 콜금리의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있다.
고유가로 인한 물가압박도 신경쓰이는 부분이다.
이처럼 경기 문제만 빼놓고는 금리인상 요인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따라서 하반기 경기회복 속도를 예의주시하면서 금통위가 금리인상쪽으로 발걸음을 옮길 것이라는 관측이 점차 힘을 얻고 있는 양상이다.
◇통화정책 효용성 논란 확산될 듯
통화당국이 콜금리를 8개월째 동결한 것을 두고 `경기흐름의 관망'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통화정책의 효용성에 대한 회의론이 불거지고 있다.
경기회복은 더딘 가운데 부동산 가격이 급등함에 따라 통화당국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외국계 투자은행들은 경기부양을 위해 추가로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한은 집행부는 현시점에서 금리인하는 경기부양 효과보다 자금의 단기부동화 양상을 더 심화시킬 것으로 우려하는 형편이다.
그렇다고 부동산 과열을 잠재우기 위한 금리인상에도 나서지 못하면서 통화정책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배상근 박사는 "장차 금리인상 결정을 내리기가 무척 힘들 것이라는 중압감 때문에 정작 금리를 내려야 할 시점에 금리를 낮추지 못하고, 막상금리를 올려야 할 상황이 닥쳤을 때도 시장에 미칠 충격을 우려해 현상유지에 급급한 인상"이라면서 "이처럼 통화정책 당국의 자신감이 결여된 것이 더 큰 문제"라고지적했다.
◇체면구긴 금통위..볼썽 사납게 된 콜금리 결정과정
지난 1일 한덕수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금리 인상이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함으로써 이번 금통위의 콜금리 동결은 결과적으로 한 부총리의 `의중'대로된 셈이다.
모든 변수를 고려, 금통위가 독자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한 부총리의한마디에 볼썽 사나운 모양새가 된 것은 물론 금통위가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는 거수기라는 비판을 불러오기 충분한 상황이 됐다.
금통위로서도 고심끝에 내린 최상의 결정이 마치 정부의 주문대로 움직인 것으로 비쳐지게 된 것에 불쾌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한은 노조도 지난 5일 성명을 내고 "`금리 절대 올리지 마'하고 명령하는 꼴"이라며 위험천만한 행태라고 재경부를 비난했다.
한 부총리의 발언이 채권시장 과열을 막기 위한 경고였다고 해석하더라도 중앙은행의 권위와 통화정책 기능의 독립성에는 이미 선명한 흠집이 나버렸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경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