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오블리비언’이라는 곡을 좋아한다. 스페인어로 ‘망각’이라는 뜻이다. 피아졸라의 작품은 단순하다. 그의 명작 ‘리베르탱고’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겨울’, ‘오블리비언’ 모두 비슷한 주제선율과 진행 방식을 갖고 있다. 사람의 호흡처럼 완급조절이 있는 탱고 리듬을 듣고 있다 보면 그 자체가 삶을 표상하는 듯 하다. 그 중에서도 ‘망각’은 느릿느릿한 아코디언 선율이 흘러가며 흐릿한 인간의 기억 그리고 과거의 어렴풋한 흔적들이 잊혀져 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 작품을 듣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엇인가를 잊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잘 잊고’ 살 수 있을까? 정신과의사 양창순 박사는 인간의 편집증 중 대부분은 과거에 겪었던 억압의 기억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자신을 배신했던 이성친구, 사랑을 주지 않았던 부모, 유난히도 미워했던 직장상사 등 부정적인 감정을 환기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 속에 남아 이성과 감정을 할퀸다. 그리고 별로 연관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유사한 정서를 환기하는 사람들에게 같은 프레임을 적용하게끔 한다. 편집증의 또 다른 원인은 불안이다. 상대방이 ‘내가 생각했던 나쁜 모습을 갖고 있지 않을까’ 우려하고 힘들어하는 것이다. 그것을 티 내건 그렇지 않건, 편집증은 한 사람의 가슴 속에 남아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편집증을 가진 사람끼리 만나면 어떻게 될까? 양 박사는 그 상태를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 만나는 순간이라고 한다. 표피가 벗겨진 생살이 드러나면 몹시 아프고 견딜 수 없듯, 정제되지 않은 감정 상태는 서로를 괴롭히고 상처주기 쉽다. 사람마다 편집증이 적용되는 포인트가 다르기에 더 힘들다. A와 B는 서로 친하거나 사랑하는 관계이지만, 각자 갖고 있는 상처가 다르기에 서로 차별화된 방식으로 괴롭히고 힘들어 할 수 있다. 이 상태가 이어지다 보면 ‘아느니만 못한’ 관계가 되고 만다. 아마 연간 40명이 넘는 이별 범죄로 인한 사망자 수도 ‘편집증과 편집증이 만난 결과’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변한다. 오늘의 나는 어제와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지나온 내 삶 주변의 누군가와 닮았다 하더라도 똑 같은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망각이 필요하다. 과거의 경험, 지식이 앞날에 걸림돌이 된다면 철저히 잊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방해가 되는 요소가 있다. 숱한 자기계발서들, 연애지침들, 주변 친구들의 어설픈 조언들이 그것이다. 그들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포괄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분절해서 듣는다. 자기가 이해하고 느낀 방식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 편파적 관점 속에서 만들어 진 조언이 유효할 리 없다. 오히려 관계를 더 악화시키고, 때에 따라서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관계에 굴레를 씌워 본질을 나쁘게 만들기도 한다. 어설픈 연애 조언이 오히려 커플을 이간질하는 결과를 낳는 것처럼.
우리는 잊고 사는 연습을 해야 한다. 과거의 상처로부터도 결별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누군가와의 건강한 관계를 방해하는 잘못된 습관도 잊을 준비를 해야 한다. 기독교 성경 속의 사도 바울은 지나온 것들을 모두 잊고 앞만 바라보는 것이 자신의 장점이라고 고백했다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과거의 기억이 아닌, 앞으로의 모습을 기대하는 여유와 미덕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지금 마주하고 있는 상대방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무엇인가 알 것 같은 만큼 모른다’고 생각해 보라.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