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방식을 너무 소홀히 했다」지난 4일 국제 이동전화 회사들의 모임인 OHG가 합의한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의 표준안이 국내 통신장비 제조업체들에는 불리하게 결정된 것으로 분석되자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우리 기술로 IMT-2000 장비를 만들지 못할 경우 수조원으로 예상되는 장비시장을 송두리째 외국에 내줄 수 밖에 없을 뿐 아니라,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이동통신 분야에서 겪은 로열티 종속의 굴레를 또 다시 뒤집어 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6일 삼성전자, LG정보통신 등 통신장비업체들에 따르면 이번 합의안은 유럽방식인 「W-CDMA」기술의 판정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때문에 북미방식인 「CDMA2000」기술개발에 주력해온 국내업체들에는 크게 불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CDMA2000기술에 대해서는 삼성전자가 11건, LG정보통신이 1건등 모두 12건의 특허를 갖고 있다. 그러나 W-CDMA기술에 대해서는 단 한건의 특허도 갖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이에 따라 이번 표준안대로 IMT-2000 서비스가 이뤄질 경우 상당 부분의 장비를 에릭슨 등 유럽 업체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유럽방식 기술은 현재 30~40% 밖에 확보하지 못한 상태』라며 『북미방식의 개발로 축적한 기술을 활용한다고 해도 초기에는 외산 장비를 상당히 도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체들은 이에 따라 IMT-2000 기술개발의 방향을 북미식에서 유럽방식으로 긴급히 선회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알카텔을 비롯해 몇몇 유럽업체들과 기술 제휴를 추진하기 위해 별도 팀까지 구축중이다. LG정보통신도 전략적 제휴업체인 영국 BT(브리티시텔레콤)사를 통해 W-CDMA특허 보유업체들과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OHG의 합의안은 유럽방식이 중심이지만 북미방식을 호환할 수 있도록 기술규격을 정함으로써 유럽업체들도 기술 변경에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국내 업체들은 유럽 업체들보다 훨씬 더 긴 조정기간이 필요해 거의 새로 시작해야 할 형편』이라고 우려감을 표시했다.
따라서 정보통신부는 국내 제조업체들의 기술수준을 시급히 파악, 유럽방식의 기술을 가능한 빨리 따라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자통신연구원(ETRI)등이 무선전송기술, 주문형반도체(ASIC)등 기반기술 개발을 담당하고 업체들이 응용기술을 맡는 등 역할분담 체체를 신속히 갖추어야 할 것으로 요청된다./백재현 기자 JHYU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