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국제경쟁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본 기업들의 M&A(인수·합병)가 본격화되고 있다.그동안 독특한 기업문화와 정부의 각종 규제로 기업간 M&A가 활발하지 못했던 일본 기업들은 최근 외국 기업들이 일본기업 사냥에 나서는 등 국제적인 M&A가 활발해지자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프랑스 자동차 회사인 르노는 지난주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일본 닛산자동차의 지분 36.8%를 54억달러에 인수키로 합의했다. 불과 1년전만 해도 닛산의 보수적인 경영자들이 경쟁업체와 합병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을 극소수에 불과했다. 특히 인수업체가 외국기업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다.
그러나 최근에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지난해 인수·합병에 관련된 일본기업수는 908개사로 1년전에 비해 35%나 증가했고 5년전인 93년에 비해서는 두배이상 급증했다.
이같은 양상은 올들어서도 계속 이어지는 추세다. 미쓰비시 케미컬과 제약회사인 도쿄 타나베의 합병, 대형은행인 주오신탁과 미쓰이신탁의 합병, 자동차 부품업체인 칼소닉과 칸세이의 합병 등 이합집산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번 주에도 대형 통신회사인 영국의 케이블&와이어리스(C&W)와 일본전신전화(NTT)가 일본 국제디지탈통신(IDC)의 인수를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외국업체가 일본 국내업체와 기업인수 시장에서 경쟁을 벌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일본이 합병시장에 적극 나선데는 외국의 합병 붐이 가장 큰 자극제로 작용했다. 지난해 미국이 1만1,400건의 합병을 성사시킨데 비하면 일본의 합병 건수는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특히 외국기업과 비교할 때 일본업체들은 규모면에서 열세에 놓여있고 국내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이러한 격차는 외국기업들간 치열한 합병이 일어나고 있는 은행, 통신, 제약업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NTT는 판매고면에서는 세계 최대를 자랑하지만 해외사업 부문에서는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 NTT가 IDC의 인수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같은 해외사업부문의 확충을 꾀하기 위해서다. 일본 최대은행인 도쿄미쓰비시 은행도 규모면에서 세계 16위에 불과하다. 또 일본 최대의 제약회사인 카케다의 매출액은 미국 머크나 영국 글렉소웰컴의 3분의 1에도 못미친다. 특히 카케다가 미국이나 독일 등 수익성 높은 해외시장에서 벌어들이는 매출은 전체 매출액의 16%에 불과한 반면 미국 제약회사인 홈 프로덕트는 41%, 영국의 스미스클라인 비참은 80%에 달한다.
일본 정부는 최근 합병과 관련된 각종 규제를 잇따라 철폐하고 있어 향후 기업 합병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법무성은 합병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소액주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수 주주가 인수·합병에 동의할 경우 소액주주들이 인수회사에 보유주식을 강제로 매각토록 하는 쪽으로 상법을 개정할 방침이다.
이와함께 합병의 걸림돌로 작용해 온 기업간 40%가 넘는 상호주식 보유 문제의 해결에도 새로운 돌파구가 열리고 있다.
우선 일본기업의 최대 주주인 은행들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보유주식 지분의 매각 압박이 점차 커지고 있다. 또 현재 6,700억달러로 추산되는 기업들의 연금재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상호보유주식을 매각하는 방안을 자민당이 내놓은 것도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형주 기자 LHJ303@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