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설 세진 문제해결로 회오리 멎어/덤핑·폐업 극소수… 거래량도 예전수준『부도사태 이전과 마찬가지로 손님들로 매일 북적대고 있습니다. 다만 혹시나 뜻하지 않은 피해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은 떨쳐버릴 수 없어 현금위주의 거래만을 하고 있습니다』(나진전자월드 송일석 PC월드 사장) 『현재 전체상가의 거래양상은 평소와 다름없습니다. 이번 사태의 고비는 부도사태와 관련된 어음이 집중적으로 돌아오고 비수기도 시작되는 3월말∼5월이라고 봅니다』(선인상가 고광철 혜성컴퓨터 사장) 『세진이 소문대로 부도가 났다면 PC시장은 회복할 수 없는 혼란상태로 빠져들었을 겁니다. 대우가 세진 문제를 무난하게 수습해 다행입니다』(용산연합회의 한 간부)
대형PC유통업체들의 잇따른 부도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용산전자상가 상인들은 부도 사태 이후의 상가 분위기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이처럼 부도 사태 이후 1주일이 지난 용산전자상가는 예상을 뒤엎고 여느때와 마찬가지의 활기찬 모습을 보이고 있어 겉으로는 부도로 인한 긴장감을 찾아 보기는 힘들다. 또 대우통신이 무성한 부도설에 휩싸였던 세진의 경영에 직접 참여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다소 안심하는 분위기다.
○…선인·나진·관광터미널·전자랜드·원효·전자타운 등으로 구성된 용산전자상가는 졸업과 입학시즌을 맞아 할인 및 판매제품을 알리는 광고포스터로 가득차 있다. 여기저기서 분주하게 제품을 운반하는 모습, 고객들과 가격을 흥정하는 상인들, 제품을 사러 나온 많은 사람들 속에서 아직까지 우려됐던 부도 여파의 징후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관광터미널의 한 여사장은 『물론 피해를 본 업체도 문을 닫은 업체도 있지만 용산전자상가가 언론에 보도된 것 처럼 어려운 상황은 아니다』라며 『용산전자상가가 대혼란에 빠져들었다는 최근 언론 보도는 현실과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특히 전체상가 가운데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소규모업체들은 별다른 피해를 보고 있지 않다』며 『다만 한보부도와 PC유통업체의 잇따른 부도로 진성어음의 할인이 제대로 되지 않아 자금사정은 어려운 상태』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문을 닫은 상점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선인상가 4층의 아프로만, 컴퓨마트를 비롯해 나진전자월드 19동 3층의 보스미디어 등 각 상가에 3∼4업체에 불과한 수준이다. 또 한국IPC의 부도 이후 상가마다 나붙었던 IPC 제품에 대한 할인판매 광고도 거의 발견할 수 없어 당초 예상과는 달리 덤핑물량이 출현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일부 제품에 대해 간간히 덤핑거래가 행해지고 있다고 상인들은 말하고 있다.
선인상가의 한 상인은 『오히려 덤핑을 예상하고 물건을 싸게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많아 방문고객은 부도 이전보다 평균적으로 10%∼20% 늘어나고 있다』며 『그러나 이런 풍문때문에 염가구매를 원하는 고객들로 어려움은 겪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겉모습과는 달리 상인들은 잇따른 부도사태에 따른 앞으로 파장에 매우 우려하는 모습.
나진전자월드 박근형 한솔프라자 사장은 『부도를 낸 대형유통업체와 거래를 해 왔던 도매상들이 어음이 돌아오는 4월정도에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덤핑거래를 할 가능성이 많아 시장질서가 매우 혼란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잠재되어 있는 부도 파장을 염려했다. 그는 또 『상인들이 알게 모르게 불안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며 『특히 현금위주로 거래를 하고 있어 제품 유통이 원할하지는 않다』고 용산의 또다른 분위기를 전했다.
게다가 상인들은 실제로 어떤 업체가 얼마만큼의 피해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제품을 거래할 때 다시한번 신용도를 따져본다고 말하고 있다. 부도 피해의 사실이 알려지면 거래에 차질을 빚기 때문에 피해를 본 업체들이 이를 쉬쉬하고 있기 때문.
용산연합회의 한 간부는 이와 관련 『피해 규모 및 업체를 파악하기 위해 피해사례를 접수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한 건도 접수되지 않은 상태』라며 『이같은 현상은 아마 부도 피해의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음은 물론 관련업체들이 무자료거래를 많이 해 증빙서류가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도매와 소매라는 각 상가의 특성에 따라 부도 사태에 따른 분위기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도매상들이 많은 A상가와 B상가의 경우 부도 사태로 인한 피해업체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반면 소매상이 많은 C상가는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입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상인은 『앞으로 부도 사태에 따른 각 상가의 피해정도가 상당한 차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도매상들이 주로 부도 업체와 거래를 해왔기 때문에 도매상이 많은 상가의 부도 파장이 상대적으로 클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상인들은 이번 부도 사태를 계기로 상가의 유통질서가 한단계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용산연합회 한 간부는 『몇년전 모대형유통업체가 등장한 이래 소규모에서 대형으로 탈바꿈한 유통업체가 15개 정도 생겨났는데 이들 업체가 대부분 덤핑을 주도해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며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이런 업체들과 덤핑의 중계역할을 담당한 이른바 「나까마」들이 많이 정리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특히 덤핑은 소매상들에게 지금까지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로도 작용했지만 장기적으론 시장의 가격체계를 파괴해 오히려 용산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었다』며 『이번 사태로 유통질서는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김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