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대통령 신년 회견과 增稅논란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5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제ㆍ외교ㆍ국방에 관한 정부의 최근 입장을 설명했다. 또한 각종 폭력과 부조리 근절, 바람직한 선거문화 창출 의지도 보여줬다. 그중에서도 18일 대통령 신년 연설 이후 촉발된 증세 논란에 대한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이 시선을 끈다. 노 대통령은 ‘당장’ 증세를 주장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그리고 대통령도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일은 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국정 책임자로서 느끼는 세금에 대한 인식과 실제로 세금을 내는 국민들의 심정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이 부분에서 대통령과 국민의 정서간에 괴리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세금을 더 내려는 국민은 없다. 보통 국민과 다른 소득원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세금은 곶감보다 무섭다’는 속담 아닌 속담이 있다. 한국인이라면 곶감이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 세금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를 이 속담은 잘 보여준다. ‘사람에게 피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으니 하나는 죽음이고 둘은 세금이다’는 속담도 있다. 이를 보면 사람이 만든 사회에서 세금이 얼마나 필연적인지를 느끼고도 남음이 있다. 역사 이래 권력은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여 더 많은 권력을 가지려 했다. 그러나 세금을 징수당하는 사람들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는 갈증을 느껴야 했다. 오죽하면 세금을 덜 낼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도 있겠는가. 사실 이 분야의 전문가는 돈도 잘 번다. 우리는 세금의 긍정적 측면을 잘 알고 있다. 공공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경비조달 방법이 세금이다. 세금제도는 인류가 사회를 이루고 살게 된 이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발명한 제도 중 최고의 걸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적정한 세금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세금을 내는 입장에서 본다면 ‘적정세금’이란 정부에 내는 세금 수준과 정부에서 받는 혜택의 심리적 균형점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세금에는 절대적인 균형점이 있을 수 없다. 세금은 부의 분배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과 적게 내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돌려받는 혜택 역시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절대적 균형점은 있을 수 없다. 심리적 균형점을 이루기 위해서는 판단에 필요한 정보와 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세금을 낸 자신에 대한 정당화가 필요하다. “지금은 아니지만 조만간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왜냐하면 소외계층을 좀 더 도와주어야 하니까”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주장에는 누구도 반대하기 어렵다. 또한 “세금을 더 걷지는 않겠지만 걷힌 세금이 소외계층을 위해 더 많이 활용되는 방향으로 정책이 재검토돼야 한다”는 주장 역시 반대하기 어렵다.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는 착한 사람이 되고 반대하는 이는 나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여론몰이’보다는 ‘적정세금’에 대한 정교한 설득논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겉으로 반대할 수는 없지만 실행과정에서 소극적인 반대는 할 수 있다.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민들이 내야 하는 세금은 어느 정도이고, 걷힌 세금은 어떻게 배분되어야 하며, 그 세금으로 국민 개개인이 어떤 혜택을 받는지에 대해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국민들은 현재의 세금 논란에 대해 좀 더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솝 우화’ 한편이 생각난다. 길을 가던 여우가 높이 매달린 탐스러운 포도를 발견했다. 그 포도를 따 먹으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포도가 너무 높이 매달려 있었기에 여우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우는 그 포도가 신포도일 거라고 중얼거리며 자신을 위안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여우와 신포도’ 우화의 여우처럼 대다수 국민들도 자신이 내는 세금의 정당성을 간절히 요구하고 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