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사진) 기획재정부 장관은 자타 공인 'MB노믹스' 5년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만큼 현 정권의 공과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그렇기 때문일까. 자신의 재임 중 사실상 마지막 언론 인터뷰로 지난 12일 서울경제신문 및 자매지인 포춘코리아와 만난 박 장관은 현 정권의 정책에 대한 다양한 평가에 대해 서운함과 고마움을 다양한 각도에서 표출했다.
박 장관은 지난 5년간에 대해 스스로도 아쉬운 점이 많다. 박 장관은 "747 공약(7% 성장, 4만달러 국민소득, 7대 경제강국)과 비교하면 조금이 아니라 아주 초라한 성적임을 솔직히 인정한다"고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경제 부문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비판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경제 분야에 대해서는 현 정권의 업적을 알아주는 것이 맞다고 말한다. 박 장관은 "지난 5년간 평균 성장률이 2.9%로 7% 성장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무역 규모 8위, 수출 규모 7위 등 순위가 올라갔다"며 "7% 성장을 제외하면 7대 대국은 허황된 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등을 이겨오며 순위가 안 밀리고 앞으로 나아간 것은 상대적으로 선방했다는 것이다.
현 정권 평가, '경제'만큼은 알아달라
박 장관은 국민소득 2만달러 안착을 경제 부문의 주요 성과로 꼽았다.
"2007년 잠시 턱걸이로 2만달러를 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1만6,000달러까지 내려왔지만 다시 2만달러를 회복했습니다. '중진국의 함정'인 2만달러 고비도 넘어섰고요."
박 장관은 다만 서민들이 어려워진 것에 대해서는 마음이 무겁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유가가 대부분의 기간에 100달러를 넘었고 기상이변으로 국제 곡물 가격까지 인상되면서 우리나라 식탁물가 충격이 컸다"며 "서민 살림살이가 어려워졌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장관 스스로 '제일 선전했다'고 보는 지표는 고용이었다.
"세계경제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5년간 125만명(연간 25만명)의 새 일자리를 만들었습니다. 2003~2007년 대호황기에도 24만명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아주 선방한 것이죠."
증세…에너지세율 인상 필요
재임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바빴다. 인터뷰 당일에는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긴급회의가 소집되면서 인터뷰 약속시간이 2시간이나 밀렸다. 15일부터 개최되는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도 참석해야 했다. 박 장관은 북한의 3차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이 안정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판다'는 말이 증명된 셈"이라고 평했다. 이어 "(G20 회의가 열리는) 모스크바에서 장이 펼쳐질 것"이라며 "한미ㆍ한일ㆍ미일 간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긴박함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의 발언에는 그래도 무거운 짐을 어느 정도는 던 분위기가 묻어났다. 민감한 문제인 세금에 대해 말을 아끼던 박 장관이지만 이번만큼은 그래도 자신의 지론을 소신껏 말했다. 우선 증세에 관해 입을 열었다
"세율을 올린다면 (소비세를 올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고를 존중하는 것이 좋겠지요. 에너지세ㆍ환경세ㆍ탄소세 등의 세율을 올리거나 새 부과 대상을 설정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물론 "세율 인상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재정부가 인수위원회에 제출한 공약재원 마련 방안에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됐을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여겨졌던 성직자 과세는 "지난주에도 관련 협의를 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마무리된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수출의존형 성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를 새로운 경제부총리가 열어줄 것을 주문했다. 그는 "두 차례의 금융위기를 겪으며 발등의 불을 끄는 게 최우선이다 보니 중장기 주요과제를 충실히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며 "금융산업 선진화, 서비스업 문호 개방 등에 더 빠른 속도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곧 회복…가계부채 경제 뇌관 안 될 것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부동산과 가계부채에 대해서는 낙관적 견해를 내놓았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달리 소득이 계속 늘어나고 일본보다 거품도 훨씬 적습니다. 좀 지나면 완만하게 회복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박 장관은 현재 상황은 수도권 가격이 조정되고 지방 가격은 오르며 격차가 줄어드는 일종의 역조정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가계부채 문제가 경제위기의 뇌관이 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없다"고 답했다. 가계부채가 양적으로는 증가 속도가 둔화됐고 질적으로도 단기 대신 장기, 변동 대신 고정금리 대출로 개선되고 있다 것을 근거로 들었다.
"저소득ㆍ다중채무자ㆍ영세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에 대해 맞춤형 대책을 쓰면 파국을 피하면서 잘 제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장기 대책 제대로 추진 못해 아쉬워
박 장관은 재임기간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중장기적인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우리나라가 저성장 기조에 진입하면서 경제활력이 떨어지는 것도 우려했다.
"우선 잠재성장률로 복귀하고 궁극적으로 잠재성장률 자체도 끌어올려야 합니다. 고령화 추세를 최대한 늦추는 한편 고령인력이 생산활동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추진해야 합니다."
향후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먹거리로 꼽히는 서비스산업의 경우 스스로 올가미를 맨 진입장벽과 칸막이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일찌감치 문호를 열고 개방한 제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것과 달리 서비스산업은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못 면했다는 것이다. 현재 서비스업의 경쟁력은 제조업의 54%에 불과하다.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관광호텔 입지 규제 등 조금씩 진전은 있었지만 속도가 아주 느립니다. 국민소득이 2만달러 중반에 진입한 만큼 서비스산업에서 돌파구를 열어야 합니다.
박 장관은 "기득권 간의 갈등 때문인데 규제를 낮추고 문호를 열어서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며 "현 정부는 조금씩 진전은 있었지만 속도가 아주 느렸다. (새 정부는) 빠른 속도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녹색산업, 신성장동력으로 활용해야
박 장관은 이명박 정부가 제시한 '녹색성장'에 대한 애착도 드러냈다. 환경과 성장을 결합해 환경을 보호하면서 산업도 부흥하자는 비전의 기틀이 마련된 만큼 신성장동력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녹색기후사무국(GCF)이 올해 중반쯤 독일에서 송도로 사무소를 이전하면 이제 우리나라도 번듯한 국제기구를 갖추고 뻗어나갈 기틀이 마련된 것입니다. 국민이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부분입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조직개편 실무작업을 했던 입장에서 '작고 효율적인 정부'가 성공적이었느냐는 질문에는 "공무원 숫자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전체적 취지는 유지됐다"고 평가했다.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외형상 하드웨어에는 성과가 있었는데 운영시스템에서 자율책임경영을 담보하는 소프트웨어에 과제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의 최대 국책사업인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물었다. 1960년대 경부고속도로 사업, 1980년대 한강 재개발사업처럼 '언젠가는 할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박 장관은 "사업의 당위성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한꺼번에 하지 말고 단계적으로 하지 그랬냐고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물은 비용이 더 많이 들어 단기간 처리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복지지상주의는 문제
최근의 복지지상주의에 대한 우려감도 나타냈다.
"복지ㆍ성장ㆍ일자리 세 축이 맞물려 선순환구조를 이뤄야 합니다. 저소득근로자를 일하지 않는 어려운 사람보다 더 지원하는 원칙이 확립돼야 합니다. "
무차별적 복지보다 수요에 맞춰 맞춤형 복지를 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경제민주화 역시 "글로벌 키 플레이어가 갈라파고스 규제를 따로 도입하면 외국인 투자에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며 시장친화적 설계를 당부했다. 오히려 비관세 장벽으로 마찰을 초래할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법이나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가급적 자발적으로 상부상조하는 관행을 만드는 게 중요하고 제도를 만든다면 시장친화적인 제3의 대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정치에 휘둘리지 말아야
현 정부의 마지막 경제 수장으로서 남기고 싶은 말을 묻자 "정치에 휘둘리지 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박 장관은 "가야 할 방향으로 뚜벅뚜벅, 배포 있게 가는 것이 좋다"며 "단기적 인기보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꼭 필요한 정책을 해나갈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수석과 장관직을 각각 2번씩 수행했다. 그는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동가숙서가식했다는 평가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언제나 마지막 공직이다, 오늘이 마지막 출근길이다라는 심정으로 일해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공직을 떠나는 소감은 "고생 끝 고생 시작"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처음 학교 나올 때는 잠깐의 외도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길어졌다. 본업에 복귀해 밀린 논문을 쓰면서 빚을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