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스만의 ‘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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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과 인화기법이 발달하면서 사진기는 더 이상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재현하는 도구에만 머무를 수 없게 됐다. 최근 사진작품의 경향을 보면 합성의 흔적이 많이 발견되지만, 1950년대부터 합성사진으로 마음까지 표현해 내는 작업을 해 온 작가 하면 제리 율스만(73)이 손꼽힌다.
아날로그 합성사진의 선구자인 제리 율스만과 디지털 합성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그의 아내 메기 테일러(45)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150여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를 연다.
흔히 합성사진은 컴퓨터를 활용한 이미지 조작이 쉽게 떠오르지만 율스만은 사진을 자르고 붙이고 조각을 모아 암실에서 다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아날로그 과정을 고집한다.
초현실적인 그의 작품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을 합성, 환상적이면서도 때로는 괴기스럽기도 하다. 율스만은 "사진 찍는 행위는 물론 후시각화(post visualization)도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과정"이라고 그의 미학적 관점을 강조한다.
남편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완성도 높은 합성사진을 만들어낸다면, 아내는 첨단 기술을 활용해 현대적인 관점으로 이미지를 재생산해 낸다. 그의 작품도 초현실적이지만, 여성스러우면서 동화 같은 느낌이 든다.
이번 전시에는 제리와 메기가 지난해 한국을 방문, 한국을 소재로 작업한 작품 10여점을 처음 공개한다. 경복궁, 창덕궁, 하회마을 등을 방문하면서 자신들이 느낀 한국의 이미지를 새롭게 창조해 냈다.
조선의 궁궐과 한국 근대 사진의 이미지를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인 물과 함께 합성, 한국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풀어냈다. 경복궁 담벼락까지 물이 차오른 듯한 작품은 한 시대의 흥망성쇠가 깊은 역사 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연출해 낸 듯하다.
안동 하회마을에서 촬영한 고목과 하늘에 흩뿌려진 종이를 합성한 작품은 우리네 할머니와 어머니가 고목 나무 앞에서 정화수를 떠 놓고 빌던 수많은 소망과 기원이 승화하는 모습과도 같다. 전시는 6월 9일까지. (02)418-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