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세영 본지단독인터뷰] "현대산업 벡텔사수준 키우겠다"

32년간 현대자동차에서 일해오다 8일 현대산업개발로 첫 출근한 정세영(鄭世永)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이날 오전 7시15분쯤 서울 삼성동 현대산업개발 사옥에 출근, 15층 명예회장 집무실에서 건설인으로서의 집무를 시작했다. 鄭명예회장의 집무실은 조카인 정몽구(鄭夢九)현대 회장이 사용하던 방.그는 30여년간 현대자동차에서 사용하던 책상을 계동사옥에서 삼성동 명예회장실로 옮겨왔다. 현대자동차시절의 체온이 그대로 남아있는 책상을 계속 쓰겠다는 鄭명예회장의 속내는 담담한 겉모습과 달리 미뤄 짐작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鄭명예회장은 이날 분가(分家)후 기자와 가진 첫 인터뷰에서 현대산업개발을 미국의 벡텔사와 같은 세계적인 건설회사로 키우겠다며 건설인으로서의 다부진 포부를 밝혔다. 그는 현대그룹에서 분리되더라도 현대산업개발이라는 상호를 바꾸지 않겠다며 앞으로 해외 건설시장에도 적극 진출하겠다고 말했다. 鄭명예회장은 『형님인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에게 과거와 마찬가지로 일주일에 한번씩 문안인사를 드릴 것』이라고 밝혀 형제간 불화설을 다시한번 일축했다. -지난 32년간 현대자동차를 운영하다가 현대산업개발에 첫 출근한 소감은. 15층 회장실이 너무 크다는 느낌뿐 별다른 감회는 없다. 예전처럼 7시를 전후해 출근했다. 지난 42년간 늘 지켜오던 출근 시간이다. -32년만에 건설업으로 되돌아왔는데 낯설지 않은가. 지금부터 연구해봐야 겠다. 당분간 쭉 해오던 아파트전문업체로서의 명성을 더 높이 쌓는데 주력할 것이다. 어제 모델하우스를 가봤는데 21세기 주택문화를 제시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자동차에 오래 있었더니 「건설업 쯤이야…」라고 생각해왔는데 떠나있던 32년 동안 건설업도 엄청난 발전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잘났다는 생각을 해왔다는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현대산업개발을 어떻게 경영할 것인지 복안이 있다면. 전면에 나서지는 않겠지만 너무 달리거나 과속하면 통제는 하겠다. 최대한 값싸고 편리한 주택을 만들어 보급하는 최고의 회사를 만들어 보이겠다. 경영은 전문경영인들이 하는 것이다. 나는 감독자일 뿐이다. 해외기술도 많이 도입하겠다. 현대자동차에서는 해마다 15~20명씩 해외에 장기연수를 보내 선진기술을 습득해왔는데 여기선 이런 제도가 없다고 들었다. 연수제도 등을 도입, 고급인력을 확충하는데 주력하겠다. -현대산업개발은 주택, 특히 아파트 전문건설업체인데 토목공사 등 종합건설사로 발전시킬 계획은 없나. 당분간 착실하게 이 분야(주택 및 아파트 전문분야)에 주력할 것이다. 더 질 좋고 편리한 주택을 만들어 더 싸게 공급하는 방안을 연구하는게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미국 벡텔사 못지않은 세계적인 건설회사로 성장시켜 나갈 계획이다. (김판곤(金判坤)부사장은 해외 주택 및 토목시장에도 적극 뛰어들 것이라고 덧붙여 종합건설회사로서의 비전을 시사했다) -현대그룹에서 분리는 언제쯤 이뤄지나. 7월쯤으로 알고 있다. -타고난 건강에 일을 하지 않으면 몸이 쑤시는 스타일로 유명한데 경영일선에 계속 나설 것인가. 아직도 건강한 체질이다. 하지만 올해안에 새로운 체제가 자리잡히면 구태여 매일 나와 체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읽고 싶었지만 미뤄뒀던 책들이 많다(鄭명예회장은 마이애미 대학의 정치학석사). 운동도 하고 골프도 하고, 여행도 다니겠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노예처럼 일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맡은 회사의 미래가 확고하고 건실한 모습만 그려지면 나이답게 살아갈 생각이다. -현대그룹에서 분리되면 현대산업개발이란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큰 계기가 없는 한 분리하더라도 현대산업개발이라는 이름은 유지할 것이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역사가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산업개발은 현대건설과 중복되는 사업분야가 많아 경쟁이 예상되는데 어떻게 절충해나갈 것인가. 건설회사는 수백개다. 그런데 현대건설하고만 경쟁한다는 발상은 비합리적이지 않은가. -5일 분가 기자발표 후 주말에 형님인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과 만난 적이 있나. 없다. 하지만 1주일에 한번정도 문안인사 드릴 것이다. -국내자동차산업은 현대의 기아인수, 대우의 쌍용에 이은 삼성합병 등 대규모 구조조정 중인데 자동차인으로서 마지막 조언을 한다면. 일각에서 어려운 때 자동차전문가들이 모두 빠져나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나는 내 세대에서 필요한 단계(양의 확대, 외국기술 습득 등)의 경영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자동차회사 경영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할 시점이 왔다. 특히 자동차산업은 지금 전 세계적으로 M&A열풍이 부는 등 대 구조조정기를 맞고 있다. 이때를 잘만 이용하면 우리도 세계 10대, 5대 메이커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자동차 전문가들이 떠난다고 걱정하는 건 기우다. 회사는 회사-사장이 움직이는게 아니라 팀웍이다. 기술진을 더 보강하고 기술력 향상에 힘쓰면 된다. 내가 떠나기 전 일일이 주요 임직원들과 만나 전한 얘기가 바로 이것이다. -지난 5일 이임식에서 흘린 눈물의 의미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32년간 근무하던 회사를 떠나려는데 서운함이 없을 수 없으며, 어찌 눈물이 나지 않겠는가. -외아들인 정몽규(鄭夢奎) 회장도 결국 자동차인으로서의 꿈을 접고 건설인으로 새로 출발하게 됐는데 어떤 식으로 경영수업을 시킬 생각인가. 나는 원래 건설회사에서 기업생활을 시작해서인지 건설업을 좋아했다. 도전하는 벤처업으로는 건설업을 해야된다는 생각을 아직도 갖고 있다. 건설업도 하기 나름이다. 세계적인 건설회사인 미국 벡텔사를 봐라. 건설도 세계 일류회사로 키울 수 있다. 몽규도 보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鄭명예회장은 그동안 우리 경제의 위기를 누차 지적하고 경고해왔지만 결국 우리 경제는 IMF구제금융을 받고 말았다. 노(老)기업가로서 우리 경제가 어떻게 나가야 된다고 생각하나. 개인이나 회사, 국가는 부지런하지 않으면 번창하지 못한다. 국가도 국민이 부지런하지 못하면 잘 살지 못한다. 우리 국민들은 지난 87년이후 나태해져버렸다. 다시 근면한 국민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부존자원이 전혀 없다. 예컨대 식량의 76%를 해외서 수입한다. 식량수입을 못하면 우리의 생활도 현재 북한과 다를게 하나 없다. 과거처럼 좀 더 열심히 일해야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선진국이 나타날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연간 휴무일은 148일에 달한다. 세계 최대기업인 미국 GM은 147.5일밖에 놀지 않는다. 남같이 해서는 남이상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경우 휴식의 방식조차 비합리적이다. -자서전을 쓰고 있다던데. 쓰고 있긴 하지만 언제 나올 진 모르겠다. -집무실 책상을 계동사옥에서 옮겨온 것은 어떤 의미인가. 현대자동차 초창기때부터 쓰던 책상이라 정이 많이 들었다. 마저 놓고 왔어야 했는데 정이 너무 많이 들어버렸다. 【정승량 기자, 사진=신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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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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