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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 57년의 역사에서 1992년만큼 다사다난했던 시기도 없을 것이다.
1992년 8월24일 오전7시 이용만 재무부 장관과 조순 한국은행 총재, 추경석 국세청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폭염을 한방에 날려버린 증시부양책을 내놓았다. 한국 증시 역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으로 기록된 이른바 '빨리사' 조치였다.
당시 증시는 사회ㆍ경제ㆍ정치적으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위기감이 고조됐다. 1989년 1,000포인트를 기록한 후 '깡통정리'를 겪으며 3년 넘게 추락하던 증시는 급기야 7월 신행주대교 붕괴와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신당 창당설이 나돌면서 8월5일 심리적 지지선이던 500포인트도 무너졌다. 8월21일에는 456포인트까지 폭락했다.
주말을 지내고 공포의 한 주를 맞은 월요일 아침, 정부는 전격적으로 '8ㆍ24 증시안정화 대책'을 내놓았다. 1년간의 '기관 주식순매수 방안'은 증시의 대반전뿐 아니라 장기적인 수요기반을 확충했다는 점에서 추세적인 상승을 기하기에 충분했다.
8ㆍ24조치와 함께 재무부는 금융권에 매수 지시를 내렸다. 은행에는 신탁계정 월별 수탁액 순증가분의 25%를, 보험사에는 보험수지차액의 20%를, 연기금에는 1년간 1조원 이상을 매수하라고 강제한 것이다. 또한 기관은 주가가 안정될 때까지는 매도보다 매수가 많도록 강요 받았다. 당국에서는 산하 기관의 주식매매 동향을 매일 체크하고 감독해 재무부에 보고했다. 선진시장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황당한 조치였지만 그 효과는 증시에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1주일간 기관은 1,000억원의 대규모 순매수를 보였는데 하나은행을 주축으로 한 은행권과 교보생명을 주축으로 한 보험사가 가장 앞장서 주식 순매수를 보였고 이후 그 규모는 점차 커졌다. 때마침 엔고와 금리 하락, 유가 하락이라는 '신3저' 현상이 나타나며 반도체 특수 등 기업실적의 호전으로 증시는 급등세를 탔다.
이때 초기 대반전의 주도주는 한보철강ㆍ삼미특수강ㆍ대우통신 등의 저가대형주였고 이후 기업실적이 호전되며 삼성전자ㆍ한국이동통신ㆍ삼성화재 등의 초우량주들이 1,000포인트 돌파의 주역이 됐다. 456포인트에서 1,145포인트까지 2년여간 코스피지수는 150% 급등했고 지수상승이 멈춘 1년 후까지도 우량주들의 상승세는 지속됐다.
올해 8월은 유난히 더웠다. 증시에는 아직도 열대야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2년이 넘도록 박스권에 갇혀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흐름이 지속되자 개인투자자들도 증시를 외면하고 있다. 지금 증시에는 무더위를 날려버릴 반전의 '무엇'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침체국면에서 빠져 나왔던 1992년의 시원했던 여름처럼 '빨리사' 조치와 같은 증시 회생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