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조강지처


술지게미(糟)와 쌀겨(糠). 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와 벼의 겉껍질을 곤궁할 때면 사람들이 먹었다. 후한서 송홍전(宋弘傳)의 한 토막. 홀로 된 누나의 혼처를 고민하던 광무제가 매형감으로 점찍은 대신에게 의향을 물었다. 토목공사를 담당하던 직책인 대사공 송홍이 답하기를 '조강지처 불하당(糟糠之妻 不下堂)'. 술지게미와 쌀겨를 나눈 아내는 내칠 수 없다는 말에 광무제는 생각을 접었다. '조강지처'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조강지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대의 대상으로 여겼다. 2,800년을 내려온 호메로스의 고전 오디세이아는 기본적으로 불멸의 젊음과 부귀영화, 미녀를 마다하고 조강지처를 향한 지아비의 귀환 이야기다. '칠거지악'까지 내세우며 여인들을 속박했던 조선시대에도 조강지처는 '부모의 삼년상을 지낸 처, 의지할 곳 없는 처'와 함께 쫓아낼 수 없는 '삼불거(三不去)'로 꼽았다. 제대로 안 지켜졌지만 조강지처를 버리면 곤장 80대를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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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법원은 조강지처 보호에 갈수록 엄격해지는 것 같다. 서울고법 가사 1부는 최근 조강지처를 배신한 의사에게 10여억원에 달하는 위자료와 재산분할 명령을 내렸다. 간통죄가 무력화하는 마당에 당연할 귀결이다. 서양에서도 조강지처를 버리면 세인의 인심을 잃는다. 신의 목소리를 지녔다는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말년에 조강지처를 버려 흠을 남겼다.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도 트로피 수집하듯이 아내를 갈아치워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선거라 급박해졌는지 민주당이 호남 조강지처론을 들고 나왔다. 어려울 때 기사회생시켜주고 선거 때마다 표를 몰아줬으니 그렇게 여길만하다. 하지만 조강지처란 고사성어에는 어려움을 나눈 만큼 부귀영화도 같이 누리자는 약속이 깔려 있다. 민주당이 과연 그랬는지, 민주당뿐 아니라 지역을 연고로 하는 우리 정당들이 조강지처를 주장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곤궁할 때마다 와서 손을 벌리니 기둥서방에 가깝다. 한결 같은 마음의 정치는 불가능한 걸까. /권홍우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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