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5년 처음 불을 밝혔다는 거문도 등대는 인천 팔미도 등대 다음으로 오래됐다. 지금은 키가 크고 멋들어진 새 등대가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만 키작은 옛 등대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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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살지 않는 백도는 높고 얕은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절벽이 서로 어우러져 장엄하면서도 변화무쌍한 모습이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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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전남 여수에서 즐기는 다도해 섬 여행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 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 중에서>
100년 넘은 거문도 등대 외로운 불빛
물속 63개물위 36개 '백도' 절경 자랑
나비가 반해 물 속인지도 모르고 날아들어갈 정도로 매혹적인 쪽빛 바다를 자랑하는 전라남도 여수. 통일 신라시대에는 작은 마을에 불과해 ‘고으리’로 불렸다가 고려 왕건이 통일한 후 전국을 순행할 때 인심 좋고 여인들이 아름답다는 의미로 ‘고울 여(麗)’와 ‘물 수(水)’를 합해 여수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이 ‘곱디 고운 물’의 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거문도, 백도, 사도 등 아름다운 섬 기행이다.
◇슬픈 역사 머금은 채 빛나는 거문도 등대
여수 앞바다 뱃길 저 너머에 자리한 거문도의 위치는 여수와 제주도의 중간 쯤이다. 거문도는 19세기말까지 ‘삼도’ 혹은 ‘삼산도’라 불렸는데 이는 흔히들 하나의 섬으로 알고 있는 거문도가 실은 동도, 서도, 고도 등 3개의 섬을 아우르는 지명이기 때문이다. 세 개의 섬이 바다 가운데를 병풍처럼 둘러싸면서 한가운데가 천연 항만을 이뤄 마치 쪽빛 호수가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거문도항 인근 고도와 서도를 잇는 다리에 ‘삼호교(三湖橋)’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삼도에서 거문도로 이름이 바뀐 배경에는 슬픈 역사가 숨어 있다. 한반도가 러시아와 영국간의 각축장이 되면서 고종 22년(1885년) 영국이 러시아의 조선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함대를 동원해 거문도를 불법 점령하는 거문도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 함대는 1887년 초까지 주둔해 있다가 청나라 이홍장의 중재로 약 2년 만에 철수했다.
청나라가 영국, 러시아와 협상을 벌이던 당시 청국 수군제독 정여창이 현지 사정을 살피기 위해 당대 거문도의 대표 문객이었던 귤은 선생과 필담을 나눴는데 그의 해박한 지식과 지혜에 놀랐다고 한다. 그래서 정여창이 귤은 선생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하자 귤은 선생은 거문도(巨文島), 즉 ‘문장이 훌륭한 선비들이 많이 사는 섬’으로 불리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결국 정여창이 조선 정부에 청해 거문도라는 정해졌다고 한다. 실제로 고종실록에도 1885년 이후부터 ‘거문도’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고도에 자리한 거문도항에서 10여분 정도 고속선을 타고 거문도 등대가 있는 서도에 닿았다. 일반인은 유림해수욕장을 거쳐 전수월산과 수월산을 이어주는 ‘목넘어’라는 특이한 이름의 바윗길을 따라 육로로 등대 관광에 나설 수 있다. 산 아랫목에서 등대가 있는 수월산 정상까지 30여분동안 걸어올라가는 길에는 바닷바람과 파도소리, 동박새가 지저귀는 소리 등이 어우러져 한폭의 풍경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1905년 처음 불을 밝혔다는 거문도 등대는 인천 팔미도 등대 다음으로 오래됐다. 지금은 키가 크고 멋들어진 새 등대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만 키가 작은 옛 등대도 지난 100여년간 그래왔듯이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깎아지른듯한 절벽 위 등대에서 쪽빛 바다를 바라보며 절벽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를 보니 100년 세월이 무심하게 느껴진다. 날씨가 좋을 때면 제주도 한라산까지 볼 수 있다니 등대 자리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태곳적 아름다움 살아 있는 백도
거문도에서 동쪽으로 28km 떨어진 해상에 위치한 백도는 39개의 무인군도로 형성된 상백도와 하백도로 구분된다. 백도 관광은 거문도항에서 백도유람선을 타고 40여분 정도 가서 유람선내 관광해설사 할아버지의 걸죽한 설명과 함께 상백도와 하백도를 살펴보는 일정이다. 풍랑이 조금이라도 일면 배가 뜨지 않기 때문에 다섯 번 왔다가 겨우 백도 구경을 한다는 속설도 있다. 다행히 찾아간 날은 풍랑이 일지 않은 좋은 날씨 덕분에 단번에 백도 구경을 할수 있었다.
물 위에 떠 있는 섬이 36개, 물 속에 잠겨 있는 섬이 63개로 ‘일백 백(百)’에서 섬 한 개가 모자라 ‘한 일(一)’을 뺀 ‘흰 백(白)’자가 돼 백도(白島)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약 6,000만년전 일어난 지각 운동에 의해 다양한 암석으로 뼈대를 갖춘 백도는 오랜 세월 침강과 융기 과정을 거친 높고 얕은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절벽이 어우러져 장엄하면서도 변화무쌍한 모습이 장관이다. 매바위, 서방바위, 각시바위, 형제바위, 석불바위 등에 얽힌 갖가지 전설도 많다. 백도에는 천연기념물인 흑비둘기를 비롯해 30여종의 조류와 풍란, 석곡, 눈향나무, 동백, 후박나무 등 아열대 식물들이 자유롭게 뒤엉켜 크고 있다. 바다 속으로는 붉은 산호, 꽃 산호, 해면 등 170여종의 해양생물이 서식하고 있어 수중 경관이 특히 아름답다고 한다.
◇물이 갈라지는 공룡의 섬, 사도
여수에서 27㎞ 지점에 위치한 사도는 동북쪽에 화양면, 북서쪽에 고흥반도가 위치하고 있으며 증도, 추도, 사도, 장사도, 나끝, 연목, 중도 등 7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도로 들어가는 관문인 선착장에 내려서면 두 마리의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 모형이 관광객을 맞이해 이 곳이 공룡 섬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특히 천연기념물 제434호인 공룡 발자국 화석지로도 유명한데 추도에서는 세계 최대 길이인 84m나 되는 공룡들의 발자국 행렬이 발견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여분간 해변 도로를 따라 걸어들어가 맞닥뜨리는 중도 기암들도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순신 장군의 눈에 띄어 거북선을 구상하게 됐다는 장군 바위를 비롯해 용꼬리를 닮은 용미암 등 기암마다 갖가지 이야기와 전설이 숨어 있다.
사도는 음력 정월대보름과 2월 영등사리, 음력 3월 보름, 4월 그믐 등을 전후로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명 ‘모세의 기적’으로 불리는 자연 현상이 일어나면 사도 인근 바다는 폭 약 10m, 길이 3㎞ 정도의 길이 만들어진다. 사도 바닷길 중 가장 크고 환상적으로 물길이 열리는 구간은 사도와 추도 사이이며 바닷길이 열리면 청각, 미역 등의 해초도 채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