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파이낸셜 포커스] 기류 변하는 정책금융기관 재편 방향

"FTA 위배 소지 낮다"… 산은, 정책금융公 흡수론 재부상<br>합쳐도 BIS비율 영향 적어<br>일부 기능 산은으로 이관 협의체 신설도 계속 검토


지난 2009년 산업은행의 민영화 추진 과정에서 산은과 정책금융공사로 분리됐던 국내 정책금융기관을 하나로 합치는 방안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두 기관의 통합이 한번 개방한 시장을 되돌릴 수 없다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역진 방지(래칫ㆍratchet) 조항에 위배될 가능성이 당초 우려만큼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산은이 정금을 흡수 통합할 경우 하락하는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BIS) 비율 역시 소폭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 당국은 종전에 논의됐던 협의체 신설을 통한 기능 조정 방안도 계속 검토하기로 했다.


10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정책금융기관 역할 재정립 태스크포스(TF)는 이날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회의를 열고 산은과 정금의 통합을 포함한 대내 금융정책 재편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금융위는 산은과 정금을 통합하는 방안과 정금의 일부 기능을 산은으로 이관하고 협의체 기능을 강화하는 두 가지 방안을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한미 FTA의 래칫 조항 위반으로 무산 가능성이 커졌던 두 기관 간 통합 논의가 재부상한 것이다.

금융 당국은 산은과 정금 통합의 걸림돌로 작용했던 문제를 검토한 결과 당초 예상보다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대표적인 것이 한미 FTA 래칫 조항 적용 문제다.

정부는 2009년 산은 민영화를 전제로 대내정책금융 기능을 담당하는 정금을 따로 설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민영화는 잠정 중단됐고 새 정부 들어 산은의 정책금융 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러면서 그동안 업무 중복 문제가 지적됐던 산은ㆍ정금의 통합 논의가 정책금융 재편의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TF 내에서 산은의 정책금융 강화가 한미 FTA의 래칫 조항에 위배될 소지가 있고 정금과의 통합은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금융 당국은 내부 법률 검토 결과 두 기관의 통합이 래칫 조항에 위배될 소지는 낮은 것으로 결론 내렸다. 금융 당국의 관계자는 "래칫 조항은 기관을 재통합하는 데 적용하는 것이 아니고 원칙적으로 규제를 더 강화할 때 적용된다"면서 "기업의 사외이사 수 일정 부분을 내국인으로 했다가 이 비율을 더 높일 때 외국 입장에선 규제 강화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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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이 정금을 흡수 통합하면 부채가 늘어 BIS 비율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당초 예상만큼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현재 정금은 산은지주의 지분 90.3%를 보유하고 있어 두 기관이 통합하면 정금이 보유한 산은지주 지분(90.3%)이 희석된다. 자본금은 크게 늘지 않았지만 두 기관의 부채는 늘어 BIS 비율(3월 말 기준 14.35%)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 당국 관계자는 "산은지주의 모회사 격인 정금은 현재 연결재무제표를 쓰기 때문에 자산과 부채가 재무제표상에 다 반영돼 있다"면서 "정금과 산은을 통합한다고 해서 갑자기 부채가 새로 생기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BIS 비율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론상 기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산은과 정금의 통합 논의가 재부상하고 있지만 종전의 협의체 신설을 통한 일부 기능 중복 조정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실제 이날 회의에서 금융 당국은 정금의 일부 업무를 산은으로 이관하고 나머지는 협의체를 통해 업무를 조정하는 것을 두 번째 방안으로 제시했다.

법률 검토 결과 래칫 조항 위반 가능성이 낮지만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전히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두 기관을 통합할 때 산은법을 개정하면서 래칫 조항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두 기관 통합 이후에도 법률 해석에 따라 미국에서 얼마든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TF의 한 관계자는 "산은법은 한미 FTA상 국책금융기관 특수성을 인정받는 현재 유보 조항에 들어가 있다"면서 "산은과 정금을 통합하면서 관련 법에 정책금융 기능을 지금보다 더욱 강화하는 내용이 들어갈 경우 충분히 국제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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