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개혁이 될 것인가, 다시 한번 미봉책이 될 것인가.
김덕중 국세청장은 취임 이후 역대 어느 청장보다 강한 개혁의 칼날을 내놓았다. 세수확보가 당면한 과제이지만 조직에 대한 수술 없이는 거듭되는 국세청 고위직들의 나쁜 행위를 차단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지난달 29일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에서 상위 1,000개 기업 사람들과 골프는 물론이고 식사도 하지 않도록 하는 한편 세무조사를 마친 것에 대해서도 본청 차원에서 전수검증을 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이 정도로는 국세청의 진정한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외부를 통한 강제적인 개혁이라는 부담이 있더라도 원점에서 조직 전체에 대한 조망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국세청의 조직개편 방안은 그런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내부 용역보고서가 과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하지만 국세청의 문제가 현재 진행형이고 이 때문에 보고서에서 주문한 개혁방안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여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보고서가 현실과 동떨어진 것도 있지만 전체 흐름으로는 맞는 방향"이라며 "다만 새 정부가 내세운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과 궤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일방적 조직축소보다는 세수확보를 위해 조직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권 교체 때마다 국세청 개혁 칼날…이번에는 성공할까=사실 국세청에 대한 개혁은 역대 정부가 추진했지만 매번 무산되고는 했다. 대선 전에는 개혁을 외치다가도 막상 집권 후에는 국세청을 활용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과거와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국세청 스스로가 어느 때보다 조직 수술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일방적인 메스를 가하기보다 완충지대를 두고 급변에 따른 반발 등을 축소하는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국세청 개혁 역시 조직의 대대적인 축소보다는 일부 기능 개선 및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전담조직을 키우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 경우 개혁을 빌미 삼아 오히려 권한 키우기에 나선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어 중립적인 차원에서 개혁방안이 만들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흐름에 맞춰 국세청 세무조사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외부인사가 인사 등 핵심 업무에 관여해야 한다는 지적이 여당인 새누리당 내에서 나오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도 국세청 조직을 전면 개편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조직의 크기와 관계없는 국세청 개혁 방안에 대한 추진력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 셈이다. 여야 모두 세무조사에 대한 국세청의 권한을 줄이고 공개된 기준에 따라 과학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어떤 내용 담았나=현재 국세청 조직은 본청ㆍ지방청ㆍ세무서 3단계로 돼 있어 두 곳이 같은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 민원처리에 대한 답변은 세 곳이 모두 맡는다. 그 밖에 세목별 과세활동 기획은 본청과 지방청이, 세무조사는 지방청과 세무서가 한다.
이 때문에 민원처리를 맡는 직원은 수시로 걸려오는 납세자의 문의에 답하느라 업무가 마비된다. 종합상담센터 등 전담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세무조사의 경우 조사대상의 규모 등에 따라 분류하고는 있지만 규모뿐만이 아니라 산업별로 다른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반면 국민과 기업의 경제권을 흔드는 국세청에 대한 견제 기구는 없다시피 하다. 국세청 조직 개편의 경우 기획재정부 등이 심사하고 감사원이 인사 운영 등을 감사하지만 상시적인 감사기능은 없다. 세정에 대한 성과평가가 있지만 제한된 범위 내에서 사후적으로만 이뤄져서 사전 예방 효과가 적다.
세무조사 업무를 맡는 국세 공무원의 비위 사건이 근절되지 않은 것도 현재의 내부 관리의 한계를 드러낸다는 게 보고서의 지적이다. 이 때문에 안종범 새누리당 의원 등은 외부 감사위원회를 신설하는 개혁 방안을 주문하고 있다. 세무조사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는 것도 국세청 개혁 방안의 주된 골자다.
현재 우리나라 세무조사는 비율이 낮고 효과도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NRP(National Reserarch Program)라는 세무조사 시스템이 있다. 탈세 추적을 위해 모든 납세자의 정보를 놓고 다른 동일업체, 지역 등과 비교해 매출신장률이 특이하게 높을 경우 세무조사를 한다.
우리나라는 세무공무원의 재량으로 하기 때문에 세무사에 대한 로비가 끊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