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여파로 중·고등학교 등의 내년 교복 구매 일정이 지연되면서 관련 업계가 대혼란을 겪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교복 가격 안정화를 위해 도입된 학교주관 교복구매제도의 시행 일정이 최근 줄줄이 지연되면서 에리트베이직을 비롯한 대형 교복 브랜드 사업자들은 생산공장에 교복 주문계약을 해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주관 교복구매제도는 각 학교 주관 하에 '최저가 경쟁입찰'을 통해 1개 사업자를 선정해 교복을 공동구매하는 것으로 내년 동복부터 전국 국ㆍ공립학교에서 의무화된다.
처음 도입되는 공동구매제도를 둘러싸고 혼란이 야기되는 것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면서 교육 당국과 각급 학교의 주요 행정 일정이 잇달아 연기돼 학교별 사업자 선정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년 같으면 4월까지는 사업자 선정이 끝나야 하지만 올해에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면서 관련 업무가 올스톱됐다. 이 때문에 전국 국ㆍ공립학교 가운데 내년도 교복 사업자 선정을 끝낸 학교는 단 한 곳도 없는 실정이다. 앞서 교육부도 올봄에 배포한 '교복구매 운영요령' 매뉴얼에서 사업자 선정이 끝나 있어야 할 4~5월을 입찰 추진 시작 시점으로 권장해 업계의 위기를 키웠다. 하지만 6·4지방선거 일정 등을 감안하면 상반기 내에 동복 생산 시작은커녕 사업자 선정조차 마무리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사업자 선정 시점이 문제가 되는 것은 국내 교복 업계가 동복 생산에만 6~8개월이 소요되는 '다품종 소량 생산 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다. 국내 교복 사업자들은 통상 4월 이내로 하청 생산 업체와 이듬해 동복·하복 물량에 관한 연간 수주 계약을 맺고 하복 생산이 끝나는 6월부터 약 8개월간 이듬해 동복을 생산해왔다. 국내 남녀 교복의 종류가 8,000여종에 달하는 반면 학교당 신입생 수는 중학교 평균 200명, 고등학교 평균 400~500명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물량 100%를 국내에서 제작을 마치려면 적어도 6월부터는 영세 공장을 풀가동해야 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사업자 선정이 늦어지면서 수주 결과를 확신할 수 없게 된 교복 사업자들은 사전 제작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하청 업체에 떠넘겨진다. 교복 사업자들은 하청 업체에 내년도 교복 계약의 해지나 지연을 통보했고 이에 따라 부산ㆍ대구ㆍ인천 등지에 있는 150여 교복 전문 생산 업체들은 올 하복 생산이 마무리되는 이달 말부터 기약 없는 휴업에 돌입한다. 에리트베이직ㆍ스마트·아이비클럽ㆍ스쿨룩스 등 대형 브랜드 사업자들도 50여 생산공장에 내년도 교복 생산계약 일정의 해지와 보류 등을 이미 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상준 한국교복협회장은 "이대로라면 정상적인 동복 제작이 불가능해 내년 중ㆍ고교 신입생 중 30~40%는 교복 없이 등교하게 될 수 있다"며 "영세 업체 가운데 상당수는 장기휴업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제도 도입으로 대형 브랜드 사업자를 비롯한 약 10여개 업체만 살아남는 구조가 가속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공동구매제의 근간인 최저가입찰제와 관련, 중소 업체들이 대형 4개 사업자의 대리점보다 낮은 가격을 써내고도 장기간 운영될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한 대형 교복업체 관계자는 "현 재고물량 처리와 애프터서비스(AS) 문제 등을 감안할 때 시범실시를 배제한 전국 동시 실시 자체가 무리수"라며 "되레 영세 업체의 폐업을 부추겨 본래 취지에서 벗어난 또 하나의 '규제강화'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