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농업에 4년간 재정 90조 쏟아붓고도 GDP비중은 곤두박질

[심층 분석] 소값 폭락… 한중FTA… 농업정책 이대로 좋은가<br>농민은 물론 기자재도 요람에서 무덤까지<br>무상수준 지원받지만 현상유지 보조금 급급<br>고부가화 재원 늘려 농가 자생력 키워야

농업 부문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은 확대되고 있지만 농업혁신은 외면한 채 보조금 지급에 급급해 하면서 농업 영세성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울경제DB


대한민국에서 농어민으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지난해 농축산물 매출이 1,0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전체 농가의 67.8%에 이를 정도로 영세성이 심각하다. 이런 가운데 소값 폭락에 이어 우리 정부가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속도를 내기로 하면서 농민들의 피해보전 및 재정지원 요구는 한층 더 들끓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필요한 조세감면 축소 등 세금지원을 줄일 수도 없다. 오히려 올해에는 대선과 총선까지 겹쳐 표심을 얻으려는 선심성 농가지원 공약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이래저래 재정당국이 긴장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서울경제신문이 10일 정부의 농어민 재정지원 현황을 파악한 결과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이후인 지난 2009년부터 올해까지 전체 지원금액이 4년 동안 90조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항목별로 보면 예산 및 기금지원 69조9,000억원, 국세감면 20조4,000억원 등이다.

심지어 농민들은 논ㆍ밭ㆍ과수원 등에서 재배되는 작물에는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되며 각종 농업 기자재에 대해 파격적인 혜택을 받는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는 농민뿐 아니라 농기자재도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거의 무상 수준으로 재정지원을 받는다"며 "농업용 기계를 생산하는 과정에 정부의 예산지원이 뒤따르고 이를 농민에게 거의 제로에 가까운 저리로 임대해 면세유 등을 주유하며 굴리다가 폐기 처분되는 과정에도 정부가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지원규모는 같은 기간 정부의 산업ㆍ중소기업 및 에너지 부문 재정지원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다. 농업지원과 제조업에 대한 지원을 일률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무리지만 90조원이 산업계에 흘러들어갔다면 쏘나타와 같은 신차를 100종 가까이 개발해 기본적인 생산설비까지 완비할 수 있는 액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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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농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되레 쪼그라들고 있다. 2000년 GDP 대비 4.6%였던 농업 비중은 2005년 3.3%, 2010년 2.6%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통계청의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농가 중 무려 67.8%가 연 매출(농축산물 기준) 1,0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 극한의 영세농이었다. 농어촌 인구 3명당 1명가량이 고령자다.

농업 전문가들은 정부가 농업의 혁신을 줄기차게 외치고 있지만 실제 상황을 촘촘히 들여다 보면 사실상 보조금으로 현상유지에 급급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종의 '퍼주기 예산'에 머물 뿐 실질적 도약을 위한 체계적 지원은 부족하다는 뜻이다.

특히 고부가가치 농업을 일구기 위한 예산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 도마 위에 오른다. 지난해 정부 예산액 중 농업을 2차 가공산업 등으로 융합ㆍ도약시키기 위한 식품산업 관련 예산은 농림수산식품부 예산의 4.8%에 불과한 것으로 지적됐다. 그나마 이러한 예산도 현 정부 들어 별도로 신설해 조금씩 늘리고 있지만 이 정도로는 농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농업의 영세성이 주로 1차 산업에 고착화한 데 있다는 점에 착안해 농업을 2ㆍ3차 산업과 연계시키겠다고 공언해왔지만 아직도 먼 길을 가야 하는 셈이다. 보조금 형태의 현상유지식 재정 비중을 과감히 더 줄이고 기술 개발 및 고부가가치 산업화 재원을 더 늘려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의 자체 파악 결과로도 우리나라의 농림수산식품 기술 수준은 선진국의 71%(지난해 기준)에 불과하다. 이태호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교수는 '농어업 재정지원체계 개선' 보고서를 통해 "농어업 부문 재정지원은 보조지원이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지원의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며 "(농가의) 정부 의존적 경향이 심화되면서 농업의 자생력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이 같은 전문가들의 지적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아 고심하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한중 FTA 협상 개시와 더불어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까지 겹쳐 있어 농민의 표를 사려는 여야의 선심성 재정지원 공약이 쏟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지난해에도 여야가 한미 FTA 비준을 명분으로 온갖 숙원예산을 따내려는 농민단체들의 요구를 올해 예산에 거의 다 반영했는데 앞으로 한중 FTA 등을 이유로 또 공약 장사를 할 가능성이 높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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