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의 계절이 돌아왔다. 노벨위원회는 관례적으로 해마다 10월 중 목요일에 노벨 수상자들을 발표, 전 세계인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진짜 노벨상 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또 하나의 노벨상이 있다. 바로 '엽기 노벨상'으로도 불리는 '이그노벨상'. 미국의 유머 과학잡지인 '애널스 오브 임프로버블 리서치(AIR·Annals of Improbable Research)'가 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지난 1991년에 제정한 상이다. 이 상은 '다시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기발한 연구나 업적을 대상으로 매년 10월경 노벨상 발표에 앞서 수여된다. 지난 1일 하버드대 샌더스극장에서 열린 2009 이그노벨상 시상식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은 공중보건 분야 수상작인 '브래지어 방독면'. 평소 여성의 가슴가리개로 쓰이는 브래지어는 이날 만큼은 그 기능을 달리했다. 우크라이나 출신 과학자 엘레나 보드너 박사는 1986년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에서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 부족으로 중독 현상을 겪은 것을 계기로 '브래지어 방독면' 아이디어를 짜냈다. 이 브래지어는 어느날 갑자기 화생방 위험에 노출될 경우 유용하게 쓰인다. 보드너 박사는 "브래지어 컵부분 패드가 필터역할을 할 수 있다"며 "5초 동안 브래지어 한쪽을 방독면으로 전환해 자신이 차고, 20초 동안 다른 쪽을 어떤 남자한테 채워줄까 생각하면 된다"고 사용법을 밝혔다. 실제로 보드너 박사는 이날 시상자로 나온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와 200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볼프강 케테를레 교수를 상대로 브래지어 방독면 착용 방법을 선보였다. 이밖에 평화상 부문에는 '빈 맥주병이 맥주가 든 병보다 더 치명적'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스테판 볼리거 스위스 베른대 법의학장이 차지했다. 생물학상에는 음식쓰레기를 분해하는 데 판다의 변이 특효약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일본 기타사토대 의학대학원생 다구치 후미아키에게 돌아갔고, 데킬라를 이용해 그럴듯한 다이아몬드를 제조하는 법을 연구한 팀이 화학상을 수상했다. 또 수의학상은 이름을 가진 젖소가 이름을 갖지 못한 젖소보다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해낸다는 것을 입증한 영국 뉴캐슬대 연구팀이 받았고, 임신한 여성은 어떻게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는가를 연구한 팀이 물리학상을,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방치해 실제 가치는 1센트인 액면가 100조달러짜리 지폐를 발행한 짐바브웨 중앙은행이 수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또 폴란드어로 '운전 면허'란 뜻의 이름을 가진 프라보 야르시(Prawo Jarzy)라는 속도 위반 상습범에게 50차례나 범칙금 고지서를 발부한 아일랜드 경찰은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그노벨상은 노벨상을 풍자해 만든 상으로, 가공인물인 이그나시우스 노벨(Ignacius Nobel)에서 이름을 땄다. 여기서 '이그노벨(Ig Nobel)'은 노벨상의 '노벨(Nobel)'과 '품위 없는'을 뜻하는 '이그노블(ignoble)'의 합성어. 국내에서는 1999년 권혁호 FnC코오롱 차장이 '향기 나는 정장' 개발로 환경보호상을, 2000년 문선명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가 '합동결혼식'으로 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