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IMF시대의 민족주의/양평 편집위원(데스크 칼럼)

국제통화기금(IMF)한파속에는 작은 바람이 끼여 있다. 민족주의 바람이다. 캉드쉬 IMF총재가 이토 히로부미처럼 설치고 다니고 그 앞에서 김영삼대통령은 고종처럼 가위눌려 있다고 다들 한탄한다. 세기초 위암 장지연이 「오늘 목놓아 울던 소리」(시일야방성대곡)가 다시 들린다.그 「오늘」은 하루가 아니라 세기였던가.이제 이런 감상을 벗어나야 한다.민족주의가 나빠서가 아니다. 민족주의는 민족의 넋이기에 그것이 없는 민족은 개미떼보다 얼이 없는 사람떼다. 그러나 민족주의도 슬기로운 민족주의와 맹목적인 민족주의가 있고 낡은 민족주의도 있다. 민족전쟁시대도 냉전시대도 지나 경제전쟁시대에 맹목적인 감상은 의병들의 구식총처럼 희생자만 늘린다. 이번 IMF교섭과정에서도 그렇다. 「국치」라는 무서운 말에 무능한 정부가 놀라 구제금융신청을 미뤘고 IMF측과의 협상에서도 허둥댔다.IMF측도 한국인들의 과민반응에 구제금융을 꺼린다는 보도가 나돌고 있다. 이제 막연한 감상만으로는 우리의 재산도 자존심도 지킬수 없음을 알았다.우리의 민족주의는 보다 차가운 이성과 탄탄한 책임감으로 다져나가야 한다. 그것은 경제전쟁시대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1965년의 한일협정반대시위에서도 우리의 민족주의는 허점을 드러냈다. 경찰에게 쫓긴 여대생시위자들이 파라솔을 버린채 도망쳤는데 그 파라솔을 살펴보니 대부분이 일제밀수품이었다는 것이다. 그후 30여년이 지났으나 일본상품의 인기는 여전하고 대일무역역조는 늘고만 있다. 뒤질세라 반일의 목소리도 독립기념관처럼 높다. 지금 이 순간도 몸에는 외제브랜드를 입고 걸치고 입에는 양주를 부으면서 「경제신탁」이라며 비분강개하는 우국지사가 없을까.그것은 발성장치가 고장난 로봇같은 꼴이지만 자세히 살피면 우리들 대부분의 모습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의 민족주의만 허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일본의 기업들은 국내에서 자기들끼리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어느 기업이 외국기업과 교섭하면 깨끗이 손을 뗀다.한국기업들이 외국시장에서 덤핑경쟁으로 제 살 깎아먹기를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책임과 희생이 따르지 않는 민족주의가 이처럼 공허하다면 사려없는 민족주의는 위험하다. 자해행위를 하면서 열광할 수도 있고 적과 우군을 혼동할 수도 있다. 「세계화」를 기치로 내건 김영삼대통령이 외인아파트와 구조선총독부건물을 헐어버린 것이 좋은 예다.그것은 얼핏 웅장한 민족서사시였고 자세히 보면 세계화를 외치는 대원군이 주연한 코미디였다. 「민족정기」에 약한 국민들은 엑스트라로 참가했다. 그것은 김대통령만도 아니다.박정희대통령은 자신의 독재를 비판하는 외국의 여론을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로 막았고 국제인권단체들의 비난은 「내정간섭」이라고 털었다.둘다 외국의 간섭에 과민한 국민정서에 호소한 것들이었다. 광주민주화 항쟁후 정부가 일본TV 보지않기 운동을 벌인 것도 그 참혹상을 가리기 위해 반일감정을 끌어들인 것이다. 오래 전의 사례만 들 것도 없다. 이번에도 IMF측은 한국경제계의 투명성을 요구했고 정부는 그것이 지나친 간섭이라는 등 국민들의 자존심을 자극했다.그러나 우리 경제의 투명성은 그들의 요구이기 전에 우리의 사활이 걸린 과제다. 경제에서 민족주의가 악용될 수 있음은 두세기전 애덤 스미스가 지적한 바 있다. 『기업들에 매수된 정치인들이 국내시장을 보호한다며 애국자로 자처하고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세력을 매국노처럼 몰아세운다.』 그 「애국자」는 바로 「민족주의자」다. 그는 지구촌시대가 아닌 민족전쟁시대에 인류가 적만이 아니라 친구일 수 있음을 지적했다.IMF시대를 맞은 우리는 경제가 아니라 민족주의를 공부하기 위해 먼지 낀 국부론을 다시 꺼내야 한다. 우리 역사책도 다시 꺼내야 한다.바쁘면 이번의 시장개방과 말투가 비슷한 개항부분이라도 읽어야 한다. 1876년 일본의 강요로 이루어진 개항과 자본시장개방은 시대와 과정은 물론 내용도 다르다.그러나 서양문화나 사고가 우리나라에 밀고 들어오게 된 점은 같다.그것이 위기이자 기회인 점도 같다. 일본의 경우 1853년 미국의 포함외교에 놀라 개항을 했으나 이를 근대화의 기회로 삼았다. 20여년뒤에는 서양식군함 운양호를 보내 식민세력으로 탈바꿈했다. 우리의 개항 20년은 근대화라는 면에서 허송한 세월이었다.동학군들은 동학교의 주문을 외우면 일본군의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다고 믿고 주문을 외우면서 쓰러졌다. 나라도 쓰러졌다. 그후 한세기동안 우리는 근대화라는 구호를 수없이 들으며 살아왔고 선진화의 문턱에 들어섰다고 믿었다.그러나 아직 우리나라는 황태자가 있는 왕조국가여서 임금의 내탕금이 있는 경제였음이 드러났다.그래서 또 한차례 「개항」을 맞았다.허세를 버리고 이 기회를 살려야 다음 세기에는 목놓아 울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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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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