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9년 4월27일 오전. 노태우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주택관계장관회의에서 “30평 아파트가 1억원을 넘고 대형아파트 평당가격이 1,000만원을 넘는 것은 방치할 수 없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회의 직후 분당ㆍ일산과 안양ㆍ군포ㆍ부천 등 5개 지역 택지 1,450만평에 33만여가구의 주택을 지어 2~3년 안에 130만명을 입주시키는 개발계획이 발표된다. 바로 세계 주택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주택 200만가구 공급계획의 하이라이트인 수도권 5개 신도시 개발이 본격화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현대산업개발 주택사업담당 이사였던 이희연(전 부영 사장)씨는 “80년대 초까지 건설업체들이 도로와 공단 등 사회간접자본(SOC) 구축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키워왔다면 80년대 중반부터는 ‘주택건설’이 당면 과제였다”고 말했다. ◇“집 때문에 민란 난다”=주택 200만가구 건설계획은 87년 대선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선거공약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취임 이후에도 “박정희 대통령이 도로를 뚫은 ‘길 대통령’이라면 나는 주택을 지은 ‘집 대통령’으로 남고 싶다”고 말할 만큼 200만가구 건설계획은 6공 기간 동안 가장 중요한 정부 정책과제였다. 실제로 이 같은 주택건설계획은 당시로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였다. 당시 건설부 주택정책과장이었던 이동성(전 주택산업연구원장)씨는 “당시 청와대에는 연일 ‘주택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자칫 민란이 초래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각 정보기관의 보고가 잇따랐다”고 말했다. 실제로 6공 출범 초기 3년간 집값 상승률은 무려 56%에 달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다. 당시 주택공급은 연간 25만가구에 불과해 서울의 주택보급률이 50%에 못 미치는 등 주택의 절대부족이 낳은 결과였다. ◇발표 2년 반 만에 집들이한 신도시=“부족한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에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을 알아보니 50만평이 채 안됐습니다. 그래서 이걸 누구 코에 갖다붙이느냐고 했죠.” 이에 따라 89년 3월 정부는 청와대와 건설부ㆍ주택공사ㆍ토지개발공사 등의 직원들로 23명의 ‘주택건설기획단’을 구성, 수도권 신도시 건설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초 기획단이 생각했던 신도시는 분당 한 곳이었다는 점이다. 평촌ㆍ산본ㆍ중동신도시의 경우 이미 이전부터 정부가 추진해오던 사업이었고 최초 계획에는 일산신도시가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검토과정에서 한강 이북에도 신도시가 필요하다는 박승 당시 건설부 장관의 건의를 노 전 대통령이 받아들임에 따라 결국 정부는 한달여 만인 4월27일 5개 신도시의 개발을 확정, 발표하게 된 것이다. 신도시 개발계획 발표에서 분양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7개월 남짓이었다. 아파트 착공은 고사하고 대지조성공사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허허벌판에 수많은 인파가 아파트 청약을 위해 몰려든 것은 그해 11월이었다. 그리고 첫 분양이 이뤄진 지 불과 2년이 채 안된 2001년 9월 시범단지 입주가 시작됐다. ◇신도시는 거대한 아파트 경연장=5개 신도시 건설은 국내 건설업체들의 거대한 경연장이었다. 메이저 건설업체인 삼성종합건설(현 삼성물산 건설부문)ㆍ현대산업개발ㆍ대림산업 등은 물론 ㈜한양ㆍ우성건설ㆍ한신공영 등 아파트 명가로 이름이 높던 업체들이 거의 빠짐없이 신도시 건설 대열에 참여했다. 여기에 대구 3인방으로 불린 ㈜건영ㆍ㈜우방ㆍ㈜청구 등 지방 주택건설 전문업체들도 대거 신도시 아파트 건설사업에 합류했다. 이희연씨는 “분당 시범단지 건설 때만 해도 물량이 많지 않아 그럭저럭 사정이 괜찮았다”며 “하지만 5개 신도시 아파트 건립이 본격화되면서 업체들은 자재와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방불케 하는 경쟁을 치러야 했다”고 회고했다. 이 때문에 각 업체 자재구매 담당자들은 콘크리트를 확보하기 위해 레미콘공장 입구에서 밤샘을 하는가 하면 인력시장은 일용직 건설근로자를 찾으려는 업체 담당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박사는 “불량자재 사용과 부실시공 문제는 30만여가구에 달하는 엄청난 물량의 집을 한꺼번에 짓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빚어졌던 부작용”이라며 “이보다는 5개 신도시 건설을 통해 부족한 주택문제를 일거에 해소, 주택시장을 안정시킨 긍정적 측면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당은 원래 베드타운이 목표였다”=신도시 입주 후 불거진 부실시공 못지않게 논란이 됐던 부분은 U턴 현상이었다. 이 때문에 언론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한동안 5개 신도시의 ‘베드타운’ 전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대해 이동성씨는 “분당신도시는 처음부터 자족도시가 아닌 베드타운으로 설계된 도시였다”고 강조했다. 분당이 당시 집값 상승을 주도했던 강남 수요 분산을 위한 신도시였던 만큼 애초부터 도시 기능은 베드타운에 목표를 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씨는 “강남권 수요 흡수와 자족도시라는 기능은 애초부터 중복될 수 없는 것”이라며 “정부가 현재 건설 중인 2기 신도시 역시 어정쩡한 자족도시를 지향할 경우 결코 강남권 수요를 흡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