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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 의지' 강조했던 과거정신, 시대 변화에 발맞춰 개선 필요
시설·R&D 투자도 중요하지만 인재·시스템 혁신에 눈돌려야
한정화 중소기업청장
고용창출 능력 큰 중기 육성, 창업지원 정책 강화 급선무
실패해도 재도전 가능하도록 리스크·걸림돌 제거 병행을
이민화 KAIST 초빙교수
혁신 기업가 대우하는 사회, 국가경제도 살아나 선순환
대기업이 '효율의 멍석' 깔고 중기가 '혁신의 씨앗' 뿌려야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 협업과 융합, 개방과 혁신을 추구하는 신기업가정신을 발휘해야 합니다."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신기업가정신을 키워야 한다는 서울경제신문의 제언에 대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두산그룹 회장, 한정화 중소기업청장, 이민화 KAIST 초빙교수는 이구동성으로 "기업가정신의 복원을 넘어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기업가정신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빠른 추격자이던 시절에는 제조역량을 갖추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시장 선도자로서 경쟁국을 앞서려면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는 기업가정신은 기본이고 남보다 한발 앞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선제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혁신역량이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혁신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내부 혁신뿐 아니라 외부의 혁신을 수용할 수 있는 개방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이 신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혁신과 투자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규제 철폐와 기업 하기 좋은 환경 조성 등 정부지원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반기업정서와 취약한 사회안전망이 기업가정신 위축 불러=박 회장과 한 청장, 이 교수 모두 최근 들어 기업가정신이 쇠퇴하고 있다는 데 공감했다. 박 회장은 일부 기업의 잘못된 행태로 인한 반기업정서가 기업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고 기업가정신의 위축을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그는 "기업이 해도 되는 것과 안 해야 하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하는 만큼 과거 압축성장 과정에서 용인된 잘못된 행동은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면서도 대기업에 대한 지나친 반감은 경계했다. 박 회장은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도가 높아졌다는 시각은 대기업의 탐욕이라기보다는 대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진 것"이라며 "성장의 열매를 골고루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렇다고 대기업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과거에 비해 기업가정신이 약화됐다고 분석했다. 취약한 사회안전망 때문에 창업에 나서는 사람이 적고 패스트 팔로어이던 시절과 달리 퍼스트 무버로서 성공한 기업가도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인들이 월가 금융인들의 탐욕은 비난하지만 애플과 스티브 잡스를 존경하는 것은 혁신을 통해 국부를 창출하고 일부만 가져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혁신을 일으킨 기업가를 대우하면 혁신이 확산되고 더불어 국가 경제도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청장은 갈수록 높아지는 기업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을 기업가정신의 퇴조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내수시장의 성장률은 둔화되고 있어 해외에서 기회를 찾아야 하는데 리스크가 커 성과를 내기 힘든 상황"이라며 "창업의 경우 실패비용이 많고 재도전할 수 없는 환경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 선도자적 기업가정신은 혁신역량이 핵심=이들은 글로벌 경쟁이 날로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선도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지금까지는 '하면 된다'는 식의 불굴의 의지를 강조한 기업가정신이 경제성장과 위기 극복의 원동력이었다면 이제는 기업가정신도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맞춰 좀 더 진화할 필요가 있다"며 신기업가정신의 요체 중 하나로 시대를 앞서가는 혁신역량을 꼽았다. 그는 "과거 패스트 팔로어 시대에는 제조역량만으로 충분했지만 이제 시장을 개척하고 선도해나가는 '퍼스트 무버'가 되려면 무엇보다 혁신역량이 필수적"이라며 "눈앞의 성과를 좇는 단기 실적주의 대신 멀리 내다보고 혁신을 위해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시설투자나 연구개발(R&D) 투자보다 더 중요한 게 비즈니스 모델, 조직, 일하는 방식에 대한 혁신에 투자하는 일"이라며 "상명하복이나 연공서열을 깨고 창조적 기업문화를 조성하거나 최고경영자(CEO)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인재와 시스템에 의해 혁신이 추진될 수 있도록 보다 선진화된 기업가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 역시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개념의 기업가정신이 마련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약화된 기업가정신을 양적으로 키우는 동시에 질적으로도 과거 정주영·이병철식의 기업가정신과도 달라져야 한다"며 "특히 마크 저커버그, 빌 게이츠와 같은 퍼스트 무버의 기업가가 나오기 위해서는 주변과 수평적으로 협력하고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기업가정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기업가정신 복원 위해 규제 철폐 및 사후관리 전환 시급=주력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신산업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 새로운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하고 혁신역량을 강화해야 하지만 기업들이 자유로운 시도와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정부가 규제개혁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 회장은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은 마음대로 불법적인 일까지 저지를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기업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말한다"며 "정부의 가장 강력한 지원은 규제를 풀고 시장에 맡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청장도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을 규제로만 풀려고 하다 보니 규제 수가 계속 늘어난다"며 "기업 활동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해야 한다"고 말했다.
갈수록 떨어지는 산업 역동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신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기업가가 쏟아져나올 수 있도록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개선하고 창업지원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이 교수는 "미국 시가총액 상위 30대 기업 중 절반 이상이 창업한 지 20년이 안 된 기업들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네이버 한 곳밖에 없는 것은 자본·자원 공급이 폐쇄적인 경제구조 때문"이라며 "애플의 앱스토어처럼 대기업은 효율의 멍석을 깔고 중소기업은 그 위에 혁신의 씨앗을 뿌리는 형식의 개방적 혁신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청장은 정부 차원의 창업 활성화 정책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대기업에 비해 고용 창출능력이 큰 중견·중소기업들을 육성하고 젊은 인재들이 창업을 통해 강소기업으로 키워갈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며 "젊은 창업자가 1억원을 투자 받으면 3년간 9억원을 매칭시켜주는 '1+9'와 같은 창업 활성화 정책을 적극 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