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5일 만에 김정은 시대 개막을 공식 선언한 것은 김정은 체제로 전환이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음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유훈통치'를 명확히 하며 북한 내 동요할 수 있는 세력들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도 가지고 있다.
22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의 사설은 김정일의 유훈을 처음 언급하며 "주체혁명ㆍ선군혁명의 길을 꿋꿋이 걸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신문은 아울러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영도자"라고 호칭하고 "진두에 서계신다"고 표현함으로써 북한 정권의 최고지도자임을 공식화했다.
북한이 국가의 정책과 비전 등 주요 사안을 노동신문 사설을 통해 알려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김정은 체제의 공식선언으로 볼 수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예상보다 빨리 북한 당국이 유훈통치 개막을 공식 선언한 점을 주목하고 있다. 당초 국내외 전문가들은 오는 28일 영결식이 끝난 후 북한이 후계 체제를 공식 선언할 것으로 예상했다. 북한이 서둘러 김정은 시대를 공식 선언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식후계자로 등장한 지 2년밖에 되지 않는 김정은 체제가 아직 확고하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장성택ㆍ김경희ㆍ리영호 등 권력 핵심세력들의 역할 등에 대해서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칫 동요세력들이 움직일 수 있다는 북한 내부 판단이 김정은 시대 공식선언을 앞당겼다는 관측이다.
김정은의 유훈통치 기간이 김 위원장의 경우처럼 만 3년을 채울지는 좀더 두고 봐야 알 일이다. 유훈통치가 시작됨에 따라 김정은 체제의 북한 국가권력도 당장 근본적인 변화보다는 현 시스템을 유지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북한은 김정은 후계 체제에 대비해 이미 후계자로 내정된 직후인 지난 200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회의를 통해 헌법을 개정했다. 또 지난해 9월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을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해 후계 체제의 기초를 마련했다. 당분간은 김 위원장 생전에 구축했던 체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대내외 정책에도 큰 변화는 뒤따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김정일 시대의 선군(先軍)통치와 강성대국 건설 노선을 유지하고 더 확실히 실현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예측이다. 외교적으로도 변화보다는 중국과 관계를 강화하면서 미국과 접촉을 통해 실리를 챙기는 현 상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ㆍ6자회담 등에 있어서도 김 위원장 생전에 스탠스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북한 지도부로서는 김 위원장의 유훈통치 전례를 그대로 따른다는 계승 차원의 논리 외에 현 경제상황과 국제관계에서 김정은 시대의 새로운 국가 시스템과 비전을 제시할 여력도, 경황도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북한 지도부 입장에서는 대내외적으로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불안감 해소가 우선 절실하다.
정치적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 김정은을 영웅화ㆍ신격화하고 있기는 하지만 김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을 후계 승계했을 당시 형성됐던 북한 주민들의 신뢰를 얻기는 힘들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권력층 내부와 주민들 사이에서도 김정은 체제를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후계수업 기간이 겨우 3년에 불과한 김정은 체제가 김정일 유훈통치라는 명분 하에 과도 체제를 거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북한은 권력교체의 와중에 있을지 모를 동요를 불식하기 위해 김 위원장 사망 직후부터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과시하는 데 초첨을 맞춰 움직이고 있다.
북한은 김 부위원장이 김 위원장 사망 발표 이튿날인 20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아 김 위원장 영전에 참배한 데 이어 계모라 할 수 있는 김옥을 비롯해 북한 권력층 내 고위 인사들이 90도 각도로 인사하며 사실상의 충성서약을 받는 모습을 언론에 공개했다.
또 언론매체를 통해 각국의 지도층이나 유력 인사들이 김 부위원장 앞으로 보낸 조전을 집중소개하고 김 부위원장에 대해 '걸출한 사상이론가' '천출위인' '불세출의 선군영장' 같은 찬양을 쏟아내면서 김정은 체제의 안정과 결속을 도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