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아시아 자동차 인수에 실패한 삼성자동차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삼성그룹은 기아입찰사무국이 현대자동차를 낙찰자로 선정하자마자 『독자적으로 사업을 계속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기아·아시아 자동차의 부실이 너무 커 인수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며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기아인수포기=자동차사업 포기설」을 일축했다.
그러나 삼성의 「독자생존」 목소리가 아무리 크다 해도 기아 인수에 실패한 삼성자동차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여기에는 한 달에 평균 1,000억원 이상 적자가 나는 지금의 사업구조로는 더이상 끌고 갈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더욱이 기아인수만이 「생존의 최선책」이라고 스스로 강조했음에도 이를 차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독자생존」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현재 삼성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크게 독자생존과 빅 딜, 기아인수자와의 제휴 등 3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이 가운데 기아인수자와의 제휴는 낙찰자인 현대가 「삼성자동차는 빅 딜 대상이 아니라 퇴출대상」이라고 수차례 밝힌바 있어 현재로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삼성의 독자생존=삼성은 3차 입찰제안서를 제출하고 난 직후 낙찰권에서 멀어졌다는 입찰 윤곽이 드러나자 자립의 뜻을 내비쳤다. 기술제휴선인 일본 닛산(日産)자동차로부터 10만~15만대 가량 위탁생산 제의를 받아 협상을 진행중이라는 것도 이같은 매락에서 나왔다. 세계적인 거부 알 왈리드 사우디왕자를 다시 찾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현대의 낙찰에도 불구하고 정부·채권단이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포드가 최종 인수자가 될 경우 포드와 제휴해 자동차사업을 그대로 끌고 나가겠다는 계획도 나오고 있다.
삼성그룹은 19일 『삼성이 자동차사업을 시작할 때 기아인수를 전제로 한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다』면서 『기아인수 여부는 자동차사업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행보에도 불구하고 상용차진출 이후 꾸준히 참여해왔던 내년 서울모터쇼에 불참을 결정한 것은 삼성의 독자생존의지에 의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또 차를 계약하고도 출고까지 3개월을 기다려야 할만큼 주문이 밀려 있는데도 생산직사원을 더 뽑지 않고 있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재계 관계자는 『입찰이 3차까지 연장되면서 1차 입찰에서 요구했던 부채탕감 규모 2조7,000억보다 훨씬 조건이 좋아졌는데도 삼성이 이를 마다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기아인수 실패는 단순한 입찰의 패배가 아니라 자동차사업 포기로 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거세지는 빅 딜 압박=정부는 자동차를 뺀 빅딜은 5대그룹 구조조정에 알맹이가 없는 것으로 판단, 재계에 자동차분야의 빅 딜을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5대그룹 구조조정의 핵심은 자동차와 반도체다』며 『자동차는 기아입찰로 단지 연기됐을 뿐 지금부터 시작이다』고 말했다.
재계 역시 반도체가 2사체제로 재편되는 마당에 삼성자동차가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빅 딜에 응한 다른 그룹들과 형평성 시비가 일 것이라는 반응이다.
전경련 손병두(孫炳斗)부회장은 지난달 11일 『삼성이 기아를 인수하면 국내 자동차 산업이 3원화되며, 현대 또는 대우가 인수하면 삼성을 상대로 새로운 협상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삼성자동차의 빅 딜가능성을 강력 시사했다.
재계에는 삼성자동차와 관련해 김우중(金宇中) 대우회장, 이건희(李健熙) 삼성회장, 정세영(鄭世永)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이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 방안에 대해 삼성의 포기를 전제로 한 모종의 합의를 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 등 재계일각에서는 삼성자동차는 빅 딜대상이 아니며 퇴출대상일 뿐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대로 둬도 자연히 정리될 수 밖에 없는 사업을 내놓고 반대급부를 챙기려고 한다면 누구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다.
아무튼 기아인수를 실패로 독자생존과 빅딜의 갈림길에선 삼성이 자동차사업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권구찬·박형준 기자】